최명용 예비역 소령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 첫걸음"...두번째 증언자로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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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용 예비역 소령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 첫걸음"...두번째 증언자로 나서
  • 신종천 선임기자
  • 승인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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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민들의 광주민주화운동 높이 평가

5.18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소문 터무니없는 사실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이동할 때 17명 정도 사망자 나온듯

[투데이광주전남] 신종천 선임기자 = 20일 오후 2시 518기념재단 대동홀에서 518구속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와 사)대한민국 특전사 동지회 주최로 열린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두 번째 증언자로 5.18 당시 3공수여단 상황실장을 했다고 밝힌 최명용(77) 예비역 소령이 증언에 나섰다.

'5·18 증언' 행사에서 증언자로 나서 "광주시민들께 죄송하다"며 "광주시민들의 광주민주화운동을 높이 평가하며 계엄군으로서 광주를 찾아 시민들을 진압한데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고 말했다. 아울러 "5.18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소문은 터무니없는 사실이라며 일부 세력들에게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아 현실이 안타깝다" 고 말했다.

20일 오후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제2회 오늘의 증언이 5·18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에서 1980년 5월 항쟁 당시 계엄군으로 진압 작전에 투입된 최명용(77) 예비역 소령이 증언하고 있다./신종천 선임기자
20일 오후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제2회 오늘의 증언이 5·18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에서 1980년 5월 항쟁 당시 계엄군으로 진압 작전에 투입된 최명용(77) 예비역 소령이 증언하고 있다./신종천 선임기자

최 소령은 증언에서 "3공수여단은 5월 16일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명령으로 광주역에 도착했다" 고 밝히고 당시 광주역에서 시민을 향한 발포 명령자를 누구인지 특정지을 수 없지만 "집단 자위권은 내려진 것으로 안다" 고 증언했다.

이 부분에서 "당시 3공수여단장이었던 최세창 준장의 명령없이 어떻게 사격이 이뤄질 수 있느냐" 는 반문에 최 소령은 "사격명령이 있었다는 생각은 든다" 면서도 "대대장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듣지 못했기에 아는 사실만 증언한 것" 이라고 말했다.

5.18당시 3공수여단은 16일 광주역에 도착하여 전남대학교에 주둔했으며 여성노동자들이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수백명이 한꺼번에 나타나 데모를 하여 자위권 차원에서 진압봉 진압 하여 사망자가 나와 시신은 전남대 건물 뒷편에 묻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이동할 때 150~200여 명의 시민군을 호로가 있는 트럭 2대에 실고 최류탄등 을 터뜨려 확실하지는 않지만 17-8구의 정도의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20일 오후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제2회 오늘의 증언이 5·18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에서 1980년 5월 항쟁 당시 계엄군으로 진압 작전에 투입된 최명용(77, 가운데) 예비역 소령이 증언하고 있다./신종천 선임기자
20일 오후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제2회 오늘의 증언이 5·18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에서 1980년 5월 항쟁 당시 계엄군으로 진압 작전에 투입된 최명용(77, 가운데) 예비역 소령이 증언하고 있다./신종천 선임기자
20일 오후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제2회 오늘의 증언이 5·18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에서 1980년 5월 항쟁 당시 계엄군으로 진압 작전에 투입된 최명용(77, 가운데) 예비역 소령이 증언하고 있다./신종천 선임기자
20일 오후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제2회 오늘의 증언이 5·18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에서 많은 시민 과 5월단체 회원, 기자들이 참석해 취재를 하고 있다./신종천 선임기자

최 소령은 전남대와 광주교도소에 암매장 한 시신의 위치를 알고 있지만, 부대가 광주를 나온 후 보안부대와 진상조사위에 말했다며 세월이 흘러 와보니 암매장 장소에는 대형 건물이 들어서 현재로서는 찾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소령은 마지막으로 주로 시위 진압 현장에서 있기보다는 지휘부 상황실에서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일 오후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제2회 오늘의 증언이 5·18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에서 1980년 5월 항쟁 당시 계엄군으로 진압 작전에 투입된 최명용(77, 가운데) 예비역 소령이 증언하고 있다./신종천 선임기자
20일 오후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제2회 오늘의 증언이 5·18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에서 1980년 5월 항쟁 당시 계엄군으로 진압 작전에 투입된 최명용(77, 가운데) 예비역 소령이 증언하고 있다./신종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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