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힘든 마을 상부상조로 재건, 미풍양속을 회복하는데 힘썼다고 함
창녕 조씨 문중에서 매년 음력 9월 두 번째 정일(丁日)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투데이광주전남] 김병철 기자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南松)마을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첨추를 지냈던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 1580∼1663)을 기리는 창녕조씨 (昌寧曺氏) 문중 사우(문중의 인물을 제향하는 사당)인 서호사가 있다.
서호사는 구림 대동계의 집회소로 지어져 정유재란과 6.25 전쟁 소실 등으로 몇 차례의 중수와 복원을 거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지붕 정자이다.
태호 조행립선생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와 함께 가족들을 데리고 외가인 구림마을로 피난해 정착한 것이 태호공파 태호종가 시대를 열었고, 나주목사 박동열에게 수학했고 김장생 문하에서도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조행립은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공으로 금천헌감, 태인헌감, 익산군수, 온양현감 등을 지냈고 내직에 있을 때는 병자호란을 예견해 ‘강화도 축성론’을 강력히 주창한 선견지명으로 많은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관직을 버리고 영암구림으로 돌아와 구림 대동계를 조직해 전쟁으로 힘든 마을을 상부상조로 재건하고 미풍양속을 회복하는데 힘썼다고 한다.
입구에는 조행립 사적비가 세워져 있고, 강당에는 ‘총취정(叢翠亭)’과 ‘서륜당(叙倫堂)’이라고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2013년 현재 서호사는 창녕 조씨 문중 조종수가 관리하고 있으며, 서호사 옆에 종가집이 있다. 창녕 조씨 문중에서 매년 음력 9월 두 번째 정일(丁日)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서구림리에는 전라남도 민속 문화재 제20호인 영암 메밀 방죽 옆 장승과 전라남도 민속 문화재 제35호인 영암 조종수 가옥(靈巖曺鐘洙家屋),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98호인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