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일강(一江) 김철(金澈) 선생" 추모식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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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일강(一江) 김철(金澈) 선생" 추모식 열려
  • 김병철 기자
  • 승인 2023.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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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이유로 5년형 선고

헌법제정 및 대통령제의 상해 임시정부 탄생 주도

"선생의 조국에 대한 큰 사랑과 숭고한 희생정신 잊지 않겠다" 다짐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一江 金澈ㆍ1886~1934) 선생의 뜻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전남 함평군 신광면에 건립된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 ./김병철 기자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一江 金澈ㆍ1886~1934) 선생의 뜻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전남 함평군 신광면에 건립된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 ./김병철 기자

[투데이광주전남] 김병철 기자 =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호남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일강 김철(一江 金澈ㆍ1886~1934) 선생의 뜻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2023년 06월 29일 오전 11시 전남 함평군 신광면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 앞에서 기관장 및 사회단체장, 도. 군의회의원, 유족, 지역주민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

종중회(회장 김내근)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며 일생을 바친 일강 선조님이 남긴 조국에 대한 큰 사랑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않겠다며 참석하신 내외귀빈과 후손들 앞에서 다짐했다. 또한, 행사를 위해 힘써주신 함평군수(이상익)와 직원, 신광면 청년회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一江 金澈ㆍ1886~1934) 선생의 뜻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2023년 06월 29일 오전 11시 전남 함평군 신광면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 앞에서 기관장 및 사회단체장, 도. 군의회의원, 유족, 지역주민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김병철 기자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一江 金澈ㆍ1886~1934) 선생의 뜻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2023년 06월 29일 오전 11시 전남 함평군 신광면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 앞에서 기관장 및 사회단체장, 도. 군의회의원, 유족, 지역주민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김병철 기자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진행된 김철 선생의 추모식을 계기로 독립을 외치던 그 당시를 상기하면서 애국심을 기억하고 계승하자는 뜻에서 신광면 청년회장의 선창으로 만세삼창을 외쳤다. 추모식을 통해서 일강 선생의 뜻을 깊이 새기고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다.

호남의 대표적 애국지사인 일강 김철 선생은 망국의 한을 풀고자 1917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1918년 여운형과 신한청년단을 조직한 후 국내로 잠입 손병희 선생과 3.1운동의 거사를 모의하였다. 같은 해 3월에 김구, 이시영, 이동영 선생 등과 대한독립 임시사무소를 개설한 후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본인의 자산을 모두 처분하고 천도교 기탁금과 경향 각지에서 모금 활동을 벌여 임정 재정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20년 7월에 열린 궐석재판(闕席裁判)에서 신한청년당 대표로 국내에 파견되어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이유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一江 金澈ㆍ1886~1934) 선생의 뜻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전남 함평군 신광면에 건립된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 ./김병철 기자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一江 金澈ㆍ1886~1934) 선생의 뜻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전남 함평군 신광면에 건립된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 ./김병철 기자

특히 8월 제6차 의정 회의에서 헌법제정 및 대통령제의 상해 임시정부 탄생을 주도하였고, 1932년 윤봉길 의사와 상해홍구공원 의거를 도모한 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임정을 항주로 옮긴 뒤 국무원 비서장 재임중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34년 6월 29일 48세에 철강성에서 타계해 임시정부장으로 항주시 악비묘 후록에 안장되었다.

1929년 11월 김영탁(金永鐸)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1930년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고, 1933년부터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서 전라도의원 등 여러 직책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활동하였고 국무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34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회의 비서장으로 선임되었으나, 급성폐렴에 걸려 6월에 숨을 거두었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追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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