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기념관...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과 호국충절을 계승하기 위한 역사교육의 장
전남 함평 신광면 일원에 김철 선생 사당인 구봉사, 수양관, 기념관,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등으로 구성
[투데이광주전남] 정성환의 문화역사이야기(71) = 전남 함평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인 일강(一江) 김철 선생의 애국정신과 호국충절을 계승하기 위한 김철 기념관이 있다. 이번 이야기는 '독립운동가들이 살아 숨쉬는 함평 김철 기념관을 찾아서' 편으로 제1편 김철 기념관 설립배경과 공간구성, 제2편 일강(一江) 김철 선생의 생애 순으로 연재된다.
◆ 김철 기념관과 상해임시정부청사(독립운동 역사관) 설립 배경
전남 함평군 신광면 일강로(구봉마을) 1만 770㎡ 경내에 조성된 김철 기념관과 상해임시정부청사(독립운동 역사관)는 일제강점기 선열들의 숭고한 항일운동의 발자취와 역사의 혼이 서려 있는 곳으로, 함평과 호남을 대표하는 김철 선생의 애국정신과 업적을 기리고 호국충절의 정신을 계승하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됐다.
◆ 김철 기념관
김철 기념관은 김철 선생의 사당인 구봉사, 수양관, 기념관,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등으로 구성됐다. 김철 기념관 내부의 공간구성은 김철 선생의 영정사진과 어록, 기념관의 상징성과 김철 선생의 생애에 대한 삽화, 1918년 신한청년당을 결성한 김철 선생의 국내 활동상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기활동 및 국무위원에 선출돼 활동한 당시의 자료 사진, 윤봉길 의사 홍커우공원 거사에 대한 결의과정과 김철 선생의 서거를 보고한 임시정부의 문서와 묘비, 추모 내용 등 김철 선생의 독립활동 사진과 유물,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어 김철 선생의 애국정신과 독립을 향한 의(義)로운 활동과 업적 등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 상해임시정부청사(독립운동 역사관)
상해임시정부청사(독립운동 역사관)는 언제 철거당할지 모를 상해임시정부청사를 후세를 위해 완벽히 재현했다.
상해임시정부청사(독립운동 역사관)는 김구 선생과 임정 요원 집무실, 회의실, 화장실, 부엌, 침실, 책상, 침대 등 각종 소품에 이르기까지 중국 상해임시정부청사에 있는 그 모습을 그대로 중국 현지에서 직접 제작해 옮겨놓은 공간으로써 각층별로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이 활동했던 자료를 주제별로 소개하고 있으며 1층은 회의실과 주방, 2층은 집무실, 3층은 숙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상해임시정부청사(독립운동 역사관) 1층 입구에 들어서면 김구 선생이 그토록 강조했던 ‘문화의 힘’에 대한 명언이 새겨진 김구 선생의 흉상이 세워졌다.
안으로 들어가면 김철 선생의 독립활동을 소개하고 임시정부 애국지사들의 생활상 및 항일 투쟁의 내용과 독립을 위해 나라를 되찾기 위한 광복군의 훈련하는 보습을 볼 수 있다.
◆ 나의 소원
백범 김구의 논문 『나의 소원』은 유엔 감시하에 남북한 총선거에 의한 정부수립 결의안을 지지하며 발표한 논문으로 동포에게 호소하는 글이다.
이 논문은 우파 민족주의자 김구의 정치적 이념과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나의 소원』의 첫 번째 내용은 “네 소원이 무엇이냐”로 시작된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면 “나의 소원은 대한독립이요” 대답할 것이다. 두 번째 소원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이요”, 세 번째 소원은 “우리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요” 할 것이다.
『나의 소원』의 마지막 내용은 내가 원하는 나라로 시작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中 -
김구의 마지막 소원은 우리나라의 완전한 독립과 평화였다.
“우리나라가 통일되어 세계평화의 중심이 되고 세계평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평화통일의 꿈은 우리가 이뤄야 한다”라는 것이 김구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군사력 세계 7위, 경제력 세계 11위, 문화의 힘 한류, k-팝 등 김구 선생이 그토록 한없이 가지고 싶었던 높은 문화의 힘은 대부분 이뤄졌으나 평화통일의 꿈은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다.
2층에는 일제가 독립운동가에게 자행한 야만적인 고문을 주제로 한 사진기록과 고문 도구를 사실적인 기법으로 배치하여 관람객들이 쉽게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돼 있으며, 1919년 임시정부수립에서 1945년 환국까지의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으며 김구 선생의 집무실도 볼 수 있다.
“신문을 받는 사람에게는 우선 반드시 옷을 벗긴다. 한 팔은 등위를 향하게 하고, 한 팔은 겨드랑이 밑으로 내보내어 두 손이 등 위에서 서로 겹치게 한다. 그리고는 두 개의 엄지손가락을 묶어 천장에 걸어 사람을 공중에 매달아 놓는다. 3~4분의 시간이 지나면 몸이 늘어져 두 발이 땅에 닿게 되며, 전신에 땀이 흐르고 심지어는 대소변을 싸게 된다. 신문하는 헌병이란 자는 책을 보기도 하고 바둑을 두기도 하며, 또 잠자기도 하며 본 척을 않는다. 4~5시간 후 혓바닥을 내밀고 숨이 끊어지려 하면 의사가 와서 깨어나게 한다. 이렇게 며칠간 계속되면 엄지손가락의 가죽과 살이 무르고 뼈가 드러난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 中에서-
3층에는 1920년대 상해 한인 거주지 거리를 재현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의 독립운동가와 함평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설명과 그 시대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봉창, 윤봉길 등 독립운동요인들이 임시숙소로 이용한 침실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모은 상하이 임시정부를 통해 후손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영웅들의 위대한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김철 선생의 고향인 이곳 함평에 김철 기념관과 상해임시정부청사(독립운동 역사관)를 건립해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2편 일강(一江) 김철 선생의 생애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