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하, 피맺힌 어느 노인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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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하, 피맺힌 어느 노인의 절규
  • 박주하
  • 승인 20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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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황혼, 시급한 노인복지 문제 …-그랑나랑 박주하…붓대로 멋대로-

#피맺힌 절규

올해 예순여섯 된 金노인은 오늘 하루 보내기가 또 걱정이다. 좁은 집에 있으려니 어린 손자들 등살에 진땀이 날거고, 덥다고 며느리 앞에서 옷 벗고 있을 처지도 못돼 이래저래 고민이다.













▲ 박주하 '투데이광주' 대표/발행 편집인

매일 올라 다니는 동네 뒤 야산이 있긴 하지만 그곳 또한 종일 지내기는 너무 지루하다. 구청에 사정해서 가까스로 마련한 아파트 내 노인정은 할머니들이 독차지 하고 있어 들어가기가 민망스럽다.

그래도 쉽게 갈 곳이란 뒷산 밖에 없어 아침을 뜨자마자 집을 나섰다. 평소에는 “아버님, 다녀오시라”며 깍듯이 인사하던 며느리도 언제부터인지 그 인사가 쑥 들어가 버렸다. 오히려 빨리 안 나가시나 눈치를 살피는 꼴이다.

이른 시간이어서 인지 팔각정 옆 노인들 모임터에는 아직 아무도 안보였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이 모임터는 그래도 인근 노인들의 유일한 휴식처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팔각정에서 바둑도 두고 장기도 두며 놀았다. 그러나 경기 불황으로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팔각정이 비좁아지자 결국 노인들이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만든 곳이 모임터다.

다행히 양지바른 이곳은 겨울에는 바람막이가 잘됐고 여름에는 시원했다. 폐품으로 버려진 의자도 주어와 맨땅신세도 면했다. 초라하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는 노인들만의 장소여서 더없이 좋았다.

金노인은 다 찌그러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먼 산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상념에 젖었다. 생각할수록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다. 빨리 죽었으면 했으나 죽기도 어렵고, 더욱이 갈 곳 없이 이렇게 외롭게 살자니 살기는 더욱더 어려웠다. 괜히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뜬 마누라에게 “망할놈의 여편네”라며 짜증스런 연민의 욕만 퍼부었다.

남쪽 시골에서 태어난 金노인은 어려운 살림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군 입대를 했다. 그리고 제대 후 아는 분의 도움으로 도청 소재지 버스회사에 취직을 했다. 운전은 군에 있을 때 수송병과여서 그런대로 자신이 있었다. 시일이 흐르면서 얼마간의 돈도 모아졌고 결혼도 했다. 부모님이 정해준 고향 이웃마을의 동갑내기 처녀였다.

성실해서인지 운이 따라서인지 가정은 차츰 여유를 찾았다. 억척스런 마누라도 파출부를 시작으로 돈이 되는 일은 가리지 않고 해댔다. 그사이 아들 셋과 딸 둘이 생겼다. 집도 장만했고 아들 셋은 모두 대학까지 졸업 시켰다. 두 딸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힘든 일이었지만 보람은 있었다. 그리고 3남 2녀가 모두 결혼 했다.

그러나 악마가 행복을 시샘한 것인가.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을 가지고 자식들 간에 불화가 생기더니 급기야 싸움이 커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金노인은 죽을 때 물려 주려든 전 재산을 3남 2녀에게 똑같이 나눠 줘 버렸다. 자기 딴에는 남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낸 것으로 여기고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데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들은 서로가 남 대하듯 멀어져 갔고 장남부부는 부모를 모시는 자기들에게 좀 더 많은 재산을 배려해 주지 않았다 해서 불평이 잦았다. 그리고 냉대가 시작됐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불행이 자기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설마'하며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그래도 마누라가 살아 있을 때는 견딜 만 했다. 그런 마누라가 5년 전 세상을 뜬 후로는 자식들이 대하는 태도가 더욱 싸늘해 졌다.

“망할놈의 여편네”

울적한 심정을 견디지 못한 그는 괜스레 죽은 마누라에게 욕을 했다. 보고 싶은 마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만 하다 허약한 몸을 이기지 못한 채 끝내 숨져간 마누라, 늙어 이런 대접 받으려고 그 고생을 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후회스럽기만 했다. 만일 지금 마누라가 살아 있다면 단둘이 오붓이 살면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일찍 올라 왔네”

인사말에 깜짝 놀라 상념에서 깨어난 金노인은 이제 막 도착한 같은 또래의 노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 노인도 자기처럼 갈 곳이 없어 거의 매일 이 산에서 지낸다.

오늘은 그 노인의 차례여서 그가 소주 두병에 돼지고기 한 근과 두부, 김치 등을 검은 비닐봉지에 싸왔다. 이곳에 오는 노인들은 언제부터인가 돌아가면서 술과 간단한 안주를 가져와 하루를 즐긴다. 돌로 바람을 막고 주위에서 나뭇가지를 주어 불을 피운 후 냄비에 돼지고기와 김치 등을 넣어 끓여 즉석 안주도 만든다.

그런데 노인들 자존심은 알 수가 없다. 아들 며느리 불효가 극심한데도 자식을 욕하는 노인은 한사람도 없다. 오히려 거짓말 까지 보태 자랑이 대단하다. 할머니들 모인 곳에서는 며느리 흉보기가 다반사인데 할아버지들은 그렇지가 않다.

한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한잔 술에 취기가 오른 노인 한분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악을 쓴다. 집에서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뭐! 밥이나 축내는 쓸모없는 늙은이라구. 그래 너희들은 안 늙나. 그리고 누가 너희들을 이렇게 잘살게 해놓았는데. 그건 바로 우리야. 우리가 안 먹고 안 입으면서 잘살게 해놓았어. 뭐! 용도폐기 감, 그런 막말까지. 어디 한번 시켜봐라. 어허허허 어엉…” 기가 차는지 목이 찢어질듯 한 울부짖음이 폐부를 찌른다.

보다 못한 옆 노인이 한자리 거둔다.

“글쎄 말이야, 즈그들은 안 늙나. 즈그들도 이다음 늙어서 자식들한테 한번 당해 봐야 해”

졸지에 자식들을 원망하는 항변의 자리로 변한다. 얼마 전까지 “내 자식들은 효자, 아들놈이 얼마, 딸년이 얼마”하면서 용돈 자랑 하더니 결국 한잔 술에 피맺힌 울분을 마구 토해 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풀죽은 어깨가 더욱 축 늘어진다.

#고령화 사회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000년 처음 총인구의 7%를 넘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2020년엔 65세 이상의 독거(獨居)노인도 40%에 이르고 나 홀로 가구도 22%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평균수명도 2008년 기준 남자 75.1세, 여자 82.3세로 매년 늘어가는 추세다.

고령화 기준은 한 국가의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7-14%이면 ‘고령화 사회'이고, 14-20%이면 ‘고령사회'이며, 20%가 넘으면 ‘초고령 사회'라고 유엔은 정해 놓고 있다.

현재 60세 이상 노인은 세계인구의 10명 중 1명꼴이다. 더욱이 2050년에는 5명 중 1명으로 늘어나고 2150년이면 3명 중 1명이 노인이 된다는 예측이다.

고령화의 빠른 진행도 문제다. 선진국의 경우 노인인구가 7%에서 14%가 되는 데는 45-115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겨우 22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인구의 주류는 여성이 55%를 차지하고 있으며 80세 이상은 65%가 여자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8년의 세계 인구는 66억7천만명으로 1950년 25억명이던 것이 50년만에 2배이상 늘어 사상최고의 인구증가율을 나타냈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에는 90억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남북한 인구는 남한 4천8백22만명과 북한 2천3백79만명을 합쳐 7천2백1만명으로 남한이 0.72% 세계 26위, 북한이 0.36% 47위를 점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는 평균 자녀수는 1970년 4.5명에서 2008년 1.51명으로 줄어 선진국의 1.5명과 비슷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시급한 노인복지

이 같은 통계를 볼 때 고령화 사회의 노인문제가 심각한 양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책이 시급하다. 金노인들과 같은 비애는 남의 일이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유교적 전통이 살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빚어지는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이 갈수록 심해져 앞으로 계속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때문에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가정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노인들을 보호하는 복지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노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와 건강이다.

65세가 되면 직업이 없어 소득이 없다. 살기도 빡빡했던 지난 시절 노후를 대비한 저축이 충분할 수 없고 설령 있다 해도 자식들에게 물려줘 버려 가진 것이 없다. 전 국민 연금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아직은 큰 혜택이 없다.

따라서 일할 수 있는 노인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고령노인들은 사회복지 차원에서 돌보는 제도가 필요하다.

무병장수는 모두가 갈망하는 일이다. 누구나 늙으면 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죽하면 저녁 잠자리에 든 노인이 아무 고통 없이 아침에 숨져 있을 때 ‘더없는 복인'이라고 말을 할까. 살기도 어렵지만 죽기도 참 어렵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치매, 중풍 등 노인질환 환자들을 치료하고 요양 받을 수 있는 시설이 태부족이다. 여가활동 공간도 마땅치 않다. 하루빨리 병을 치료하고, 의료 서비스를 받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공간 제공 등이 이뤄져야 한다.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평생을 자식들 위해 헌신하고 국가발전에 이바지 해온 노인들. 그런 그들을 이제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방치해 둘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자식들 효를 기대하며 그들 보호에 의존할 것인가. 국가와 사회는 이 노인문제가 사회문제로 크게 번지기 이전에 최우선적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그들이 노후를 편히 지내다 고통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빠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남의 일 대하듯 나 몰라라 외면해서는 절대 안 된다.

‘피맺힌 어느 노인의 절규'는 한 노인의 절규만은 아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절규일 수 있다.

오늘도 다방에서, 산속에서, 그리고 길거리를 헤매는 노인들.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진정으로 따뜻하게 돌봐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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