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누정 문화의 멋과 풍류를 접할 수 있는 명소
[투데이광주전남] 김병철 기자 = 소쇄원의 소쇄는 ’깨끗하고 시원하다 ‘라는 의미이며, 전남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쇄원길 17에 소재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간 원림으로 명승 40호로 지정된 곳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 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탁월하게 배어나는 문화유산이다.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는 조선 중종 때 인물로 16세에 조광조 밑에서 공부를 하여 17세에 과거시험(현량과)에 합격한 인물이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임금이 합격을 취소했다고 한다. 그해에 기묘사화가 일어나 스승인 조광조가 화순 능주로 귀양을 가서 사약을 받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자 양산보는 고향으로 돌아와 세상에 나가지 않기로 다짐하고 세상과 이별을 할 때(55세)까지 자연에 묻혀 처사로 지낸 곳이 소쇄원이다.
소쇄원은 양산보가 어릴 때 놀던 계곡으로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잘 이뤄내 조선시대 선비들의 심상이 오롯이 묻어나는 공간으로,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봉대와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이 있으며,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의 산 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이루고 흘러 내려와 담장 밑을 통과하여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한다.
광풍각은 양산보가 계곡 가까이 세운 정자를 광풍각이라 하고 방과 대청마루가 붙은 집을 제월당이라고 한 것은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춘릉春陵의 주무숙(1017~1073)의 인물됨을 얘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을 맑고 맑음이 마치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라고 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어찌 보면 처사로서 양산보의 삶이 마음에 맑고 깨끗함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제월당은 정자라기보다는 정사(精舍)의 성격을 띠는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책을 읽는 곳이었다. 당호인 제월霽月은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의미한다.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춘릉(春陵)의 주무숙(1017~1073)의 인물됨을 얘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을 맑고 맑음이 마치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라고 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대봉대는 1985년경에 재건된 것이다. 소쇄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 소정은 시원한 벽오동나무의 그늘에 앉아 봉황새(귀한 손님)를 기다리는 집이다. 「소쇄원 48 영」의 주요한 시점의 하나로 여기에 서면 소쇄원의 모든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봉대는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대를 쌓고 정자(소정)를 지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대봉대는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봉황새를 기다리는 동대桐臺‘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그 곁에는 봉황새가 둥지를 틀고 산다는 벽오동나무와 열매를 먹이로 한다는 대나무를 심었다.
소쇄원은 지역 문화를 이해하려는 많은 이들의 휴식과 문화체험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입구에서부터 계곡과 대숲이 어우러져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공간으로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조경, 건축 등 전문가들이 꼭 들러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