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사직공원 이야기ⓛ]..."광주의 역사를 품은 사직공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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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사직공원 이야기ⓛ]..."광주의 역사를 품은 사직공원을 찾아서"
  • 정성환 전문기자
  • 승인 2023.01.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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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공원으로 불리다가 광복 후 ‘사직단’이 있는 곳이라 하여 ‘사직공원’으로 불려
백호 임제와 면앙정 송순, 눌재 박상, 고산 윤선도, 충무공 이순신, 의병장 김덕령 등의 흔적 남아
팔각정, 사직단, 석서정, 양파정, 관덕정 등 곳곳에 문화역사 흔적 산재
광주 사직공원 전망 타워 [정성환 기자]
광주 사직공원 전망 타워/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투데이광주전남] 정성환의 문화역사이야기(56) =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소재한 사직공원(社稷公圓)에는 광주의 정신적인 뿌리인 눌재 박상, 조선 시조의 대가 고산 윤선도, 우국충정의 대명사 충무공 이순신 등의 문화역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번 사직공원 이야기는 총2편으로 제1편 광주의 역사를 품은 사직공원, 제2편 사직공원 시비(詩碑)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으로 나눠 기술된다.

사직공원 입구 통기타 거리 [정성환 기자]
사직공원 입구 통기타 거리 [정성환 기자]

◆ 광주의 역사를 품은 사직공원(社稷公圓)

사직공원이 들어선 산은 16세기 기록인 〈신등동국여지승람〉에 ‘양림산’으로 등장한다. ‘양림산’에는 조선시대에 사직단(社稷壇)이 있었고, 현재 사직공원이 들어선 산이라 하여 ‘사직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직산’은 해발 100m가 조금 넘은 작은 언덕이지만, 생성 시기는 1억 5000만 년 전 백악기에 생성된 무등산보다 빠른, 2억 년 전 쥐라기에 생겨났다고 한다.

광주의 역사를 품은 사직공원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975년대 사직공원 수영장 [출처=사직공원]
1975년대 사직공원 수영장 [출처=사직공원]
1975년대 사직공원 동물원 [출처=사직공원]
1975년대 사직공원 동물원 [출처=사직공원]

1924년 일제는 일본 황태자 히로히토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직산에 벚꽃을 심어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광주 시민들의 접근성이 편리하도록 광주천에 다리(현, 양림파출소 앞 금교)를 설치하고 지금의 전망 타워 자리에 나무로 만든 전망대를 세웠다. 이 나무 전망대는 팔각정이 세워지기 전 1973년까지 존재했으며 광주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광주 시민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이 기념공원은 기존의 제1공원인 광주공원의 다음 공원이라는 의미에서 신 공원이라고 했으며, 광복된 후부터 ‘사직단’이 있는 곳이라 하여 ‘사직공원’으로 불렸다고 한다.

1970~80년대에 사직공원은 벚꽃의 아름다움과 동물원, 팔각정, 사직수영장과 ‘양파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광주 시민의 휴식처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며, 당시 팔각정은 최고의 포토존이었다.

1971년 사직공원에는 동물원과 수영장이 만들어지고 사직단이 있던 자리에 사직동물원 매표소가 들어섰다. 당시 동물원은 광주 제일의 소풍과 휴식의 명소로 광주 시민들이 즐겨 찾던 휴양지였으며,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사직공원에는 그때 그 시절의 동물원과 수영장, 놀이기구도 모두 사라지고 없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사직단을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사직동물원은 우치공원으로 옮겨지고 옛 사직단이 있었던 동물원 입구 매표소에 사직단이 복원되어 현재 우리 고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빛고을 광주를 지키고 있다.

사직공원이 있는 사직산은 아주 작은 동산이지만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우리의 역사가 새겨진 시비(詩碑)를 만나볼 수 있다.

백호 임제와 면앙정 송순, 광주의 정신적인 뿌리 눌재 박상, 조선 시조의 대가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 우국충정의 대명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 충장로의 주인공 의병장 김덕령의 ‘춘산곡’ 등 10여 개가 넘는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사직공원 맨 위 옛 팔각정 자리에는 사직공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전망 타워가 조성되어있다.

옛 팔각정의 모습을 살려 새롭게 만든 전망 타워는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상징조형물로 새롭게 재탄생해 광주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93년대 팔각정의 모습 [출처=사직공원]
1993년대 팔각정의 모습 [출처=사직공원]
구 팔각정 흔적 [장성환 기자]
구 팔각정 흔적/사직공원 소재 [장성환 기자]
전망 타워/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전망 타워/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 사직공원 전망 타워

사직공원의 상징이었던 팔각정은 1973년 완공 이후 2012년 철거되기 전까지 40여 년간 무등산 능선 너머 일출을 감상하기 좋은 광주의 해돋이 명소로 유명했다. 옛 팔각정 자리에 들어선 전망 타워는 양림동의 야경문화를 이끄는 대표적 공간으로 2014년 11월 완공되어 2015년 3월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가족들의 휴식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주 출입구인 1층을 시작으로 2층 데크 쉼터, 3층 전시실, 4층 전망대가 있다. 전시실에는 북카페를 비롯해 미디어 파사드, 전망 망원경, 태양계 행성을 체험하는 인터렉티브 존 등 다양한 체험 공간들이 조성돼있다.

사직단/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사직단/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 사직단(社稷壇)

사직단은 신성한 장소로써 삼국시대 때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 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토지의 신(神)과 곡식의 신(神)에게 제사(祭祀)를 올리며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사직제(社稷祭)를 지내는 곳이다. 사(社)는 땅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뜻한다.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祈穀祭), 가뭄 때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기우제(祈雨祭), 홍수 때 비를 그치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 눈이 내리게 해달라는 기설제(祈雪祭)를 지내는 것이 모두 사직제(社稷祭)이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통치를 하던 일제는 사직단을 일본군 병영으로 삼아 군사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사직제를 폐지했다.

결국, 사직산의 사직단은 그 기능을 상실하고 흉물로 방치되어 오다가 1924년 일본 황태자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사직산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사직단(社稷壇)은 헐리고 신 공원(사직공원)이 조성된다.

1960년대 말, 사직단의 자리에는 사직동물원 매표소가 들어서고 사직단의 흔적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1991년 사직단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광주 시민의 노력으로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기고 1994년 지금의 사직단을 복원해 100년 만에 사직제(社稷祭)가 부활했다.

석서정(石犀亭)/광주 천변 소재 [정성환 기자]
석서정(石犀亭)/광주 천변 소재 [정성환 기자]
양파정(楊波亭)/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양파정(楊波亭)/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양파정 편액/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양파정 편액/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일제 친일협력자 단죄문/사직공원 양파정 소재 [정성환 기자]
일제 친일협력자 단죄문/사직공원 양파정 소재 [정성환 기자]

◆ 석서정(石犀亭)과 양파정(楊波亭)

석서정(石犀亭)은 2006년 광주천 정화사업 때 조성되었다.

원래 석서정은 고려 우왕 때 광주 목사 ‘김상’이 광주천의 물길을 바로 잡아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지금의 양파정(楊波亭) 앞 광주천 가운데 석축을 쌓고 큰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짓고 ‘석서정’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전하다.

그러나 지금 지어진 ‘석서정’의 위치는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점이 많아 아쉬운 점이 있다.

양파정(楊波亭)은 고려말 광주천의 홍수를 막기 위해 건축된 ‘석서정(石犀亭)’을 떠올리며 1914년 광주의 대부호였던 양파 정낙교(1863~1938)가 자신의 호를 따서 세운 누정(樓亭)이다.

‘양파정’의 언덕 일대는 원래 ‘꽃바심’이라고 불렸던 곳으로, 광주천 쪽으로 돌출된 언덕이 꼬챙이(곶, 串)처럼 생겨 주변 경치를 구경하기에 좋은 위치였다고 한다.

정낙교는 구한말 갑부로서 많은 공덕을 쌓았으며, 풍류를 좋아하고 시문(詩文)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이 정자에서 기생조합의 소리꾼들을 초청해 잔치를 열었고, 매년 전국 한시 백일장을 개최해 ‘양파정’ 시단을 형성했다고 한다.

지금도 정자에는 당시 명사들의 시문이 새겨진 30여 개의 편액(時文)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보존된 편액 중에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정봉현, 여규형, 남기윤, 정윤수 등이 쓴 편액도 있어 광주광역시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맞아 정의로운 역사를 바로 세우고, 이들의 친일행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양파정 앞에 이들의 ‘단죄문’을 설치했다.

양파정의 주인 정낙교의 외손자인 ‘정추(음악가)’와 ‘정준채’는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았던 ‘정율성’과 양파정에 자주 놀러가 「심청가」 등 판소리를 감상했다고 전하며, 농성광장에는 ‘전참봉정공낙교시혜비’를 세워 당시 광주의 대지주 정낙교의 음덕을 베풀었음을 전하고 있다.

경찰충혼탑 [정성환 기자]
경찰충혼탑 [정성환 기자]

◆ 경찰충혼탑

경찰충혼탑은 광주 전남 순국 경찰관을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탑으로, 1948년 여수‧순천 사건과 6‧25전쟁으로 목숨 바친 순국 경찰관 3,564명의 위패가 봉안된 곳이다. 경찰충혼탑은 1956년 옛 전남도청 앞 상무관 정원에 최초 건립하였으나 1981년 현 위치에 재건립하였다.

옛 관덕정에서 활 쏘는 모습 [출처=사직공원]
옛 관덕정에서 활 쏘는 모습 [출처=사직공원]
관덕정(觀德亭)/국가등록문화재 제694호/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관덕정(觀德亭)/국가등록문화재 제694호/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 관덕정(觀德亭)

관덕정(觀德亭)은 활터로 공자(孔子)의 예기(禮記) 편에 나오는 사이관성덕(射以觀盛德)이라는 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기록으로 전한다.

사이관성덕(射以觀盛德)이란 활쏘기를 통해 활 쏘는 사람의 덕행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초기 문신 신숙주가 쓴 ‘희경루기’에 따르면 “1451년(문종 1) 태수 안철석이 광주 읍성에 ‘공북루’를 중건하면서 그 동쪽에 ‘관덕정’이라는 사장까지 두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그 유구한 역사를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중기부터 광주 일대에 국궁장이 존재했는데 광주도심지, 천변, 광주공원 등 여러 곳으로 옮겨지다가 1961년 현재의 사직공원 야산으로 이전 신축되었다.

호국 무공수훈자전공비/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호국 무공수훈자전공비/사직공원 소재 [정성환 기자]

◆ 호국 무공수훈자전공비

이 전공비는 1950년 6.25 전쟁 및 월남전에서 전공을 세운 광주지역 무공 수훈자들의 전공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충의와 호국의 정신을 전승하고자 2002년 11월 5일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광주지부에서 건립했다.

 

<제 2편 사직공원 시비(詩碑)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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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 마을 2023-01-11 19:55:41
    늘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읽을거리 많이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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