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양림동 역사문화마을' 이야기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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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양림동 역사문화마을' 이야기 [3편]
  • 정성환 전문기자
  • 승인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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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문화역사가 어우러진 광주의 명소
오방 최흥종 기리기 위해 광주 방림1동 일원 '오방로’ 지칭
불편한 걸음을 걷는 동네 어르신의 모습 연상 ‘펭귄 마을’로 불리게 돼
오방 최흥종 기념관, 팽귄마을, 이강하·한희원·양림 미술관 등 곳곳 산재

[투데이광주전남/정성환의 문화역사이야기31] 정성환 전문기자 = 이번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울분과 좌절 속에 한 줄기 희망을 찾고자 몸부림쳤던 광주 청년들의 혼(魂)과 예술문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네번째 중 세번째 이야기다.

이번편엔 최흥종 기념관, 팽귄마을, 이강하·한희원·양림 미술관, 김현승 시인과 다형 다방, 뒹굴 동굴, 호랑가시나무 등 곳곳의 문화역사 이야기를 다뤄본다.

△ 오방 최흥종 기념관

오방 최흥종 기념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오방 최흥종 기념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오방 최흥종 기념관 내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오방 최흥종 기념관 내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오방 최흥종 기념관/전시실. /정성환 기자
오방 최흥종 기념관/전시실. /정성환 기자
오방 최흥종 기념관/전시실. /정성환 기자
오방 최흥종 기념관/전시실. /정성환 기자

오방 최흥종 기념관은 빈민구제 활동과 독립운동, 선교 및 교육 등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독립운동가 최흥종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2019년 10월 개관하여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오방 최흥종(五放 崔興琮, 1880~1966)은 광주광역시 불로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일찍 여의고 장터에서 부랑아들과 어울리며 방탕 생활을 하다가 선교사 유진 벨과 포사이드를 만나면서 기독교인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최흥종은 젊은 시절 ‘최망치’로 명성이 높았던 건달이었는데 그런 그가 1909년 추운 겨울, 누더기 차림에 추위에 떨며 길바닥에 쓰러진 노파를 자신의 털 외투를 벗어 입혀주고 보듬어주는 선교사 ‘포사이드’의 자애로운 모습을 보고 큰 충격 속에 깨달음을 얻은 이후, 광주 최초의 목회자로, 환자의 아버지로, 독립운동가로, 사회운동가로 고독한 성자의 길을 걷게 된다.

1900~50년대에는 한반도에 나환자가 무척 많았는데, 윌슨과 포사이드 선교사가 이들의 치료를 맡고, 최흥종은 이들을 돌보고 되면서 그는 일평생 가난하고 병든 자를 위해 한국 최초 ‘광주 나병원’을 설립하고 나환자 치료에 일생을 바친 한센병의 아버지로 불린다.

광주 3·1만세 운동의 밀명을 받고 서울에 올라가 광주·전남 출신의 김범수 등 청년들을 만나 광주지역 만세시위에 대해 협의하고 내려오던 중 3월 5일 남대문 역전에서 시위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1년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1923년 광주 YMCA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기독교 청년운동에 앞장서고, 1927년 신간회 광주 지회장,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위원장직을 역임하는 등 민족운동에 헌신했다.

1935년 기독교 지도자들이 신사참배에 동의하자, 최흥종 목사는 아호를 오방(五放)이라 정하고 그는 모든 외부활동을 중단하고 “세속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하나님 속에서 자유롭게 살겠다”라는 사망통지서를 지인들에게 보낸다.
오방(五放)이란 ‘다섯 가지를 놓아버린다’라는 의미로, 집안의 일, 사회적 체면, 경제적 이익, 정치적 활동, 종파적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무등산 자락 증심사 계곡 ‘오방정(五放亭)’에 은거하며 병자와 빈민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만 전념하게 된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주를 방문해 최흥종 목사에게 남긴 휘호 ‘화광동진(和光同塵)’은 ‘노자’에 나오는 구절로,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다”라는 뜻으로 “자기의 뛰어난 지혜와 덕을 감추고 속인과 어울려 지내면서 참된 자아를 보여 준다”라는 오방 최흥종의 신념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해방 이후 광주 건국준비위원회(건준위) 위원장으로 추대되어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헌신하다 건준위가 좌익만의 인민위원회로 바뀌게 되자 건준위원장직에서 사퇴하고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한다.
1948년 최흥종 목사는 전남 나주에 음성 나환자들을 위한 시설인 ‘호혜원’을 설립하고, 1958년 폐결핵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인 ‘송등원’을 무등산 자락 원효사 부근에 설립했다.
1966년 예수의 삶을 따르지 않는 교인들의 태도를 개탄하며 전국 교회에 경고문을 보내고 단식과 절필을 선언한 그는 일평생 걸인·환자·고아들을 위해 헌신하다 1966년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고 1995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는 민족운동가이자 사회·노동운동가, 빈민 선교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소설가 문순태는 『성자의 지팡이』라는 소설을 통해 오방 최흥종을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성자’로 추앙했으며, 2009년 광주광역시는 방림1동 주민센터에서 봉선2동 무등아파트 단지 입구에 이르는 거리를 ‘오방로’로 지정해 그의 숭고한 애민정신을 기리고 있다.

‘오방정(五放亭)’은 본래 석아(石啞) 최원순이 은거하던 석아정(石啞亭)이었는데 최흥종 목사에게 물려주어 ‘오방정(五放亭)’이 되었고, 그 뒤에 의제 허백련에게 물려주어 ‘춘설헌(春雪軒)’이 된다.
석아정(石啞亭)의 주인공 석아 최원순(石啞 崔元淳, 1891~1936)은 광주 출신으로 일본 동경에서 2·8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민족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이다.
그는 친일파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반박하고 ‘총독 정치는 악당 보호정치’라고 비판하며 일제에 항거하다 3개월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그는 옥중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병이 깊어지자, 무등산 증심사 계곡에서 석아정(石啞亭)을 짓고 요양 중 1936년 4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이후 석아정(石啞亭)은 최원순과 함께 민중운동을 주도했던 오방 최흥종 목사가 들어와 살면서 오방정(五放亭)으로 바뀌게 되고, 최흥종 목사가 타계한 이후 의재 허백련이 이어받으며 춘설헌(春雪軒)이 된다.

허백련은 진도 태생으로 일본 유학 중 법학을 공부하다 중단하고, 남종화에 심취하여 1922년 조선 미술전람회에 ‘추경산수도’를 출품해 수상하면서 일약 미술계의 샛별로 등장한다.
1938년 허백련은 광주에서 화가와 문필가, 독립운동가, 정치인 등을 규합하여 ‘연진회’를 결성해 호남 문예 부흥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해 호남화단의 성장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예향’ 광주의 뿌리가 된다.

그는 화가로 머물지 않고 전통 녹차를 되살리기 위해 ‘삼애다원’을 설립해 ‘춘설차’ 보급에 힘썼으며, 농촌의 발전을 위해 ‘삼애학원’을 설립해 농촌지도자를 양성했다.
허백련은 춘설헌에 30여 년을 머물며 한국 남종화를 대표하는 수많은 작품을 후세에 남기고 ‘남종화의 마지막 꽃’으로 불리며 1977년 8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 팽귄 마을

펭귄마을/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펭귄마을/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펭귄마을/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펭귄마을/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펭귄마을/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펭귄마을/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팽귄마을이 소재한 양림동에는 이장우와 최승효 고택 같은 고풍스러운 주택도 있지만, 낡고 허름한 집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팽귄 마을이 있던 곳은 원래 낡고 오래된 집들로 악취가 진동한 좁은 골목길이었는데, 2010년 이 마을의 빈집에 불이 나고 그곳은 쓰레기들이 쌓이는 흉물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마을의 촌장이 앞장서서 마을 주민과 함께 빈집을 깨끗이 치우고 항아리, 고장 난 벽시계, 액자 등 버려진 물건을 가져와 골목길 벽면에 전시하면서부터, 오래된 낡은 것이 오히려 작품이 돼 ‘골목길 갤러리’로 다시 태어나 하루하루가 깨끗해졌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그 집터에 아담한 작은 텃밭을 일궈 갖가지 농작물을 재배해 함께 나눠 먹으면서 우의를 다졌고, 주민들은 이 고마운 텃밭의 이름을 짓게 되는데, 40여 년 전 불의 교통사고로 불편한 걸음을 걷는 동네 어르신의 모습이 아장아장 걷는 펭귄의 모습처럼 귀엽다고 해서 ‘펭귄 텃밭’이라는 이름이 지어지고, 양림동의 한 작은 마을은 ‘펭귄 마을’로 불리게 된다.

골목길로 접어들면 좁은 골목의 벽마다 삶의 흔적이 그림으로, 벽화로, 시(詩)로 장식된 팽귄 마을은 양림동 일대 근·현대 문화유산과 아기자기한 공방 등이 한데 어우러져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를 끌면서 SNS를 통해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골목길 담벼락에 설치된 각종 작품은 고물들이 모여 보물로 재탄생된 것으로써 팽귄 마을 골목길은 1970~80년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듯 담벼락의 소품 하나하나가 중년들에겐 유년시절 추억을, 청소년들에겐 색다른 경험과 호기심으로 갤러리에서 미술작품을 관람하듯 찾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강하 미술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이강하 미술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한희원 미술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한희원 미술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한희원 미술관 내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한희원 미술관 내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양림미술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양림미술관/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 이강하 미술관
이강하 작가는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다.
조선대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순수미술학과를 전공했다.
이강하 미술관은 옛 양림동사무소를 새롭게 단장하여 2018년 광주 남구 구립 이강하(1953~2008)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작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며 양림동과 인연을 맺으며 이곳에서 보낸 20여 년 동안 한국 전통사상이 깃든 남도의 ‘맥’ 등 대표작품을 발표했다.

△ 한희원 미술관
한희원 미술관은 한옥 주택을 매입하여 2015년 미술관으로 개조하여 개관했다.
방 두 개의 벽을 헐어 전시공간으로 꾸몄는데 작가의 투박한 문학적 서정성을 짙게 우려내는 작품들을 커피도 마셔가며 편안히 감상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한희원 작가는 광주 양림동에서 성장했다.
학강초등학교, 숭일중, 숭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 미술교육학과에 진학했다.
한희원 작가 옆집에 소설가 문순태 선생이 살고 있었는데, 대학생이던 한희원이 문순태 선생의 집에 무작정 들어가 차 한 잔 달라고 한 것이 인연이 되어 문순태 선생의 소설 “타오르는 별”을 신문에 연재할 때 1년간 삽화를 그렸다고 한다.
조선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미술 교사로 재직했으며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작품 150점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2003년 광주광역시 남구 종합문화예술회관 개관 기념 전시회에 시인 김현승, 이수복, 곽재구 소설가, 문순태, TV 드라마 작가 조소혜의 작품을 회화로 표현해 양림동의 문인들을 최초로 알렸고, 양림동을 주제로 다수의 전시회를 개최하여 양림을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양림동 재개발로 인하여 옛집들이 철거되는 현장을 다니며 마을의 유물과 폐품을 수집해 창틀에 양림동의 풍경을 그려 넣어 서양 선교사 마을로만 알려졌던 양림동을 예술가 마을로 가꾸는 데 앞장섰다.
 
△ 양림 미술관
1년 365일 문화가 숨 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3012년 개관했다.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다양한 문화 예술 공간으로 활용되어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형 김현승 비/호남신학대학교 소재. /정성환 기자
다형 김현승 비/호남신학대학교 소재. /정성환 기자
다형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시비/호남신학대교 소재. /정성환 기자
다형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시비/호남신학대교 소재. /정성환 기자

△ 김현승과 다형다방
다형 김현승(茶兄 金顯承, 1913~1975)은 평양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제주도와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숭일학교 초등과정을 수료한다. 이후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숭실전문학교 문리과 재학 중 장편 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 숭실전문학교 교수의 추천으로 동아일보에 게재되면서부터 문단에 등단한다.

이후 김현승은 모교인 숭일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일제로부터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동자로 몰려 투옥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10여 년간 절필하게 된다.
해방 후 한국현대시의 지성적 감성 세계를 담아낸 <신문학>을 간행하며 창작 활동을 재개하고 조선대학교와 숭실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다.
무등산을 바라보며 홀로 커피 마시기를 유난히 좋아해 자신의 호를 ‘다형(茶兄)’이라 했다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시들 중 대부분은 광주에서 교편을 잡는 동안 집필된 것인데, 지금도 널리 회자 되는 <가을의 기도>는 시인의 기독교적 가치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시로 평가받고 있다.

다형 김현승은 한국문단에 배출한 문인들 외에도 <봄비>의 시인 이수복 선생을 비롯해 문병란, 문순태, 김준태 등 호남 문학의 주역이 될 많은 문학인을 배출했기에 양림동을 시인의 마을이라고 불린다.
1973년 차남의 결혼식을 치르고 고혈압으로 쓰러져 병원과 교회를 오가며 치료를 받던 김현승은 1975년 숭실대학교 강의를 나갔다가 채플 시간 도중 쓰러져 6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다형다방’은 커피를 즐겼던 양림동의 상징적 시인 김현승을 기리며 그의 호를 따 ‘다형(茶兄)’이라 이름 짓고 그를 추억하는 공간으로 꾸몄다고 한다.
1층은 양림동 근현대에 활동한 주요인물과 양림동의 문화 예술을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어, 양림동 인상전, 가을 시 낭송회, 연극 등 다양한 전시나 이벤트 행사를 진행 하기도 한다. 2층은 좁은 공간이지만 양림마을을 내려다보며 시상에 잠길 수 있는 옥탑방 같은 정취가 아늑하다.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7호/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7호/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뒹굴 동굴/일제강점기 방공호/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뒹굴 동굴/일제강점기 방공호/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평화의 소녀상/작품명(진실)/작가(이이남)/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평화의 소녀상/작품명(진실)/작가(이이남)/양림동 소재. /정성환 기자

△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조선 시대에 심어진 호랑가시나무의 수령은 약 410년으로 높이는 6m, 둘레 1.15m로 이 수종으로는 보기 힘든 큰 나무로 조선 시대부터 이 일대에서 야생으로 자란 것을 선교사들이 관상용으로 보호해 왔다고 한다.
호랑가시나무는 남쪽 따뜻한 지방에서만 자라고, 나뭇잎은 다섯 개의 가시 모양 톱니가 있어 호랑이의 등을 긁는데 쓸 만하다고 하여 ‘호랑가시나무’ 또는 ‘호랑이 등긁기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겨울에는 눈 속에서도 열매가 붉은빛을 띠는 관상수로써 크리스마스를 상징하여 성탄 트리로 사용되었고, 호랑가시나무의 잎과 줄기를 엮은 것은 예수의 가시관, 붉은 열매는 예수의 핏방울, 희면서도 노란 꽃은 예수의 탄생, 나무껍질의 쓴맛은 예수의 고난을 의미한다고 하여 일명 예수의 나무로 불렸다고 한다.

△ 뒹굴동굴
‘뒹굴동굴’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뒹굴 거리며 여유롭게 쉬어가라는 뜻이라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실제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4개의 방공호 지하시설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곳은 광주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미국의 공습으로부터 대피하기 위해 1940년대부터 사직공원 밑에 방공호를 만들었는데 광복을 맞아 중단된 후에는 마을 사람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이 중 하나는 너무 작아 지금은 찾아볼 수 없고, 나머지 세 개는 각각 문화재 지킴이 센터, 개인 주택으로 사용되고 나머지 하나는 ‘뒹굴 동굴’로 남아있다.
이러한 역사가 스며있는 ‘뒹굴 동굴’은 2013년 근대역사자료로 복원되어 양림동의 문화와 역사, 예술을 공감할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재탄생되어 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 평화의 소녀상
‘이이남’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적인 인물로 이옥선 할머니를 선정하여 할머니의 꽃다운 16세 소녀 시절 모습과 92세의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벌어진 반인륜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반드시 규명되어 우리의 역사적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과거의 소녀와 현재의 할머니가 한 장소에 있음으로써 과거와 현재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작품이다.

다음엔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마지막 이야기가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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