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의 학덕을 기리는...장성 '필암서원'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로 소재 1975. 4. 23 사적 제242호 지정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2021-09-08     정성환 기자

 

필암서원(筆巖書院)/유네스코

[투데이광주전남] 정성환의 문화역사이야기10 = 이번 이야기는 조선시대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선생의 학덕을 기리는 장성 '필암서원' 「공간구성」편이다.

<조선왕조 정조실록>에 “하서(河西)는 우리 동방의 주자(朱子)이며, 염계 주돈이(濂溪 周敦頤)이자, 호남의 공자(孔子)이다. 조선 개국 이래 도학(道學)과 절의(節義)와 문장(文章)을 모두 갖춘 이는 오직 하서(河西 金麟厚) 한 사람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필암서원(筆巖書院)은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그의 문인이자 사위인 고암(鼓巖) 양자징(梁子徵)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철거되지 않은 전국 47개의 서원 중 전라도에서 철폐되지 않은 3곳(필암서원, 포충사, 무성서원) 중 한 곳으로, 1975년 사적 제242호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 7월 필암서원을 포함한 9개 한국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필암서원은 김인후 선생 사후 1590년(선조 23년) 호남 선비들이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장성읍 기산리에 창건하였으나, 1592년 정유재란으로 불에 탄 후 1624년 기산리 증산동에 다시 세우고, 1662년(현종 3년) 필암서원으로 사액 되었다. 1672년(현종 13년) 지금의 자리인 해타리로 옮겨오면서 마을 이름도 필암리로 바뀌게 된다.

확연루(廓然樓)

장성 ‘필암서원’을 들어서면 먼저 홍살문 옆에 설치된 ‘하마석’을 볼 수 있다.

‘하마석’은 말을 타고 내릴 때 사용하는 디딤돌이다.

조선시대에 임금, 관료, 양반, 부자들은 말을 타고 내릴 때 하인들의 등을 밟고 말을 타고 내렸다고 한다.

그때 정조대왕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마석’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이처럼 하마석에는 정조대왕의 위민(爲民)정신이 담겨있다.

하마석(下馬石)

경건한 마음으로 홍살문을 지나면 서원으로 들어가는 2층으로 지어진 ‘확연루’가 있다.

확연루(廓然樓)란 필암서원의 출입문으로 선비들이 시를 짓고 휴식을 취했던 건물이다.

확연(廓然)이란 확연대공(廓然大公)에서 인용한 문구로, 널리 모든 사물에 사사로운 마음이 없이 공평하다는 뜻으로, 성인(聖人)의 마음을 배우는 군자(君子)의 학문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우암 송시열은 김인후 선생의 인자한 성품을 기리기 위해 확연(廓然)이란 두 글자를 인용해 편액을 썼다.

‘확연루’를 들어서면 강학 공간인 필암서원의 청절당(淸節堂)이 있다.

필암서원

 

청절당(淸節堂)

청절당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쓴 하서 선생의 ‘신도비문’의 청풍대절(淸風大節)이라는 구절을 인용해 동춘당 송준길이 썼다.

청풍(淸風)은 ‘부드럽고 맑게 부는 바람’이라는 뜻이고, 대절(大節)은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지키는 절개’라는 뜻으로 하서 선생의 인품과 사상을 잘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

청절당 내부에는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비롯하여 고경명·정철 등의 시를 새긴 많은 현판이 걸려있다.

‘백록동학규’는 중국의 강서성의 백록동서원의 학규로써 김인후 선생은 ‘백록동 학규’를 읽고 주자의 훌륭함에 감탄했으며, 선비들이 백록동 학규를 숙지하고 학문에 전념할 것을 독려했다고 한다.

경장각(敬藏閣)

청절당 정면에는 경장각(敬藏閣)이 있고, 좌·우에는 동재와 서재가 있다.

경장각에는 인종이 세자시절 김인후 선생에게 하사한 손수 그린 묵죽도(墨竹圖)와 묵죽도 목판을 보관하던 곳으로, 왕과 조상의 유물을 공경하여 소장하라는 뜻도 담겨있다고 한다.

편액은 정조 임금이 초서로 쓴 친필이며 임금이 쓴 글씨는 직접 볼 수가 없어서 망사로 씌워져 있다.

경장각은 3마리의 용머리와 국화문양이 조각된 주심포 양식의 3칸 팔작지붕으로 주위 건물과는 품격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진덕재(進德齋)=동재

동재는 선배 유생들이 사용하는 기숙사이며, 덕을 향해 나아간다는 유교 이념이 담겨있다고 한다.

숭의재(崇義齋)=서재

서재는 후배 유생들이 사용하는 기숙사이며, 의(義)를 숭상한다는 유교 이념이 담겨있다고 한다.

경장각과 동재 사이에는 계생비가 있다.

계생비(繫牲碑)

계생비(繫牲碑)는 봄·가을에 제사 지낼 때 제물로 바치는 산 짐승을 묶어놓고 검사하는 곳이라고 하며, 앞면은 ‘필암서원 계생비(筆巖書院 繫生碑)’라 쓰여있고, 뒷면은 묘정비(廟庭碑)가 새겨져 있다.

경장각을 지나 내삼문을 들어서면 우동사(祐東祠)가 있다.

우동사(祐東祠)

 

하서

우동사(祐東祠)는 하서 김인후 선생과 제자이면서 사위인 고암 양자징을 배향한 사우이다.

‘우동’이란 뜻은 송시열이 쓴 신도비문의 ‘하늘이 동방을 도와 하서 선생을 태어나게 했다’라고 극찬한 데서 비롯되어 동방의 ‘동’자와 돕는다는 ‘우’자를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편액은 주자(朱子)의 글씨를 집자하였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제사를 지낸다.

대성전의

대성전에는 문정공 김인후 선생의 신위를 비롯하여 신라 설총으로부터 정몽주, 조광조 등 18현이 배향되어있다.

하서 김인후 선생의 문묘 배향은 사후 236년이 지난 1795년(정조 20년)에 비로소 이루어졌다.

계생비(繫牲碑)를 지나서 토담을 들어서면 장판각과 한 장사가 건물이 있다.

장판각(藏板閣)

 

장판각

장판각(藏板閣)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5호인 하서선생문집목판 650매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6호인 초서천자문, 백련초해, 목판 56판 등이 보관되어 있다.

한 장사는 노비 중에서 최고 책임자가 생활하는 공간이다.

전사청(典祀廳)

전사청(典祀廳)은 제사에 쓰이는 물건 등을 보관해놓고 제사에 올리는 음식을 장만하는 곳이다.

정방(측간,

필암서원을 나서면 한옥으로 건립된 필암서원 유물전시관이 있다.

원진관(元眞館)=유물전시관

유물전시관인 원진관(元眞館)의 ‘원진’은 공자와 주자를 잇는 하서 김인후 선생의 위업을 기린다는 뜻이라고 하며, 하서 김인후 선생의 후손들이 기증한 29종 3,794점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유물전시관

이곳에는 서원의 역대 원장들과 강학을 담당한 교수, 소속 유생들의 명단, 서원의 재산을 기록한 문서 등이 보존되어 있어 서원의 운영과 당시 교육제도 등을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노비보」, 「노비안」, 「원장선생안」, 「봉심록」 등 14책 64매로 구성된 「필암서원문적일괄」은 보물 제587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서

 

조선의

 

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