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주주의 발원지는 고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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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주주의 발원지는 고창이다
  • 고창군청 문화시설팀장 전민중
  • 승인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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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청 문화시설팀장 전민중
고창군청 문화시설팀장 전민중

민주주의는 다수의 민중이 지배하고, 지배받는 정치 형태를 뜻한다. 링컨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 표현한 바 있다. 한마디로 민중이 중심인 세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필자는 당연히 조선후기 고창에서 비롯되었다 생각한다. 예술과 종교, 민중운동이 고창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원래 기능을 뛰어넘어 주체적 민중이 중심되는 민주주의 토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고창에서 민주주의로 진화된 역사적 사건들을 예로 들면 아래와 같다.

첫째, 판소리가 진화된다.

구전으로 떠돌던 유희(遊戱)의 판소리가 조선후기 동리 신재효에 의해 개작·정리되면서 주체적 민중이 주인공인 예술로 발전된다. 실제 신재효는 판소리 여섯마당 전반에 그동안 소외되었던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하는 담화공간을 의도적으로 확장·조성해 놓고 있다.

일례를 들면 현전 「적벽가」 필사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1870년 추정)의 소설로 언급된 <화용도전>의 경우 단 3명의 장졸이 등장한다. 그러나 신재효본 <적벽가> 군사설움 대목은 조조에게 불만을 품은 장졸들을 7명이나 등장시켜 전쟁과 국가에 대한 비판의식을 강화하고 인권중요성을 집적화시키고 있다.

둘째, 동학이 진화된다.

동학이 고창에 들어와서는 본연의 종교 기능을 뛰어넘어 주체적 민중이 시대의 중심임을 주장하는 민주주의 성격으로 정치화한다. 황현의 『오하기문』과 김재홍의 『영상일기』 기록에 의하면 1892년 8월 선운사에서 고창 무장의 동학접주 손화중과 300여명의 신도들에 의해 기획적으로 ‘미륵석불 비기 탈취사건’이 일어난다. 조선 왕조를 멸망케 한다는 천지개벽의 비결을 입수했다는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무장·고창·흥덕·영광·부안·고부·정읍·태인·전주·금구 등에서 동학도의 수가 수만명으로 급격히 불어난다. 이를 계기로 들불처럼 번져 그해 10월과 11월 충청도 공주와 전라도 삼례에서 각각 이전과 다르게 반봉건 정치 색깔을 띤 교조신원운동이 일어난다. 나아가 1893년 2월 광화문 복합상소에 이어 충청도 보은과 전라도 금구·원평에서도 군중집회가 발발한다.

셋째, 민중 봉기도 진화된다.

조선후기 1800년대 일어난 100여건의 봉기들은 탐관오리에 대한 지역 내 징벌과 최고권력자로 하여금 인사조치 해달라는 피동적 차원의 민란이다. 반면 부정부패가 한 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제도적 모순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간파한 데서 출발한 고창 무장 봉기는 개혁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면서 기획적으로 일어났음을 선포한 발전된 민중운동이었다. 실제 동학농민혁명 고창 무장 포고문에 ‘백성이 근본이다’라는 글과 ‘온 나라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고 수많은 백성이 의논을 모아 ...’라는 문장에서 주체적 민중이 시대의 중심임을 선언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부패한 권력 등을 바로 잡기 위해 일어난 광화문 촛불혁명과 6월 항쟁, 5·18민주화운동, 4·19혁명, 3·1운동의 뿌리가 동학농민혁명이다”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반적 내용들을 고려할 때 주체적 민중이 중심인 지금의 판소리와 동학, 동학농민혁명을 있게 한 고창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원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을 통해 민중이 중심인 세상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기적이 아니며,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 흐름의 정통성이 고창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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