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양민학살사건의 기억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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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양민학살사건의 기억 (14)
  • 글/백은하 소설가
  • 승인 20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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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어치게 사까, 어치게 사까.”
함평양민학살사건 생존자 이금남씨
함평양민학살사건 생존자 이금남씨


[투데이광주] 이금남씨는 당시 17세였다. 2019년 현재 85세다. 전남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900번지에서 살고 있다.

1950년 1월 14일, 전남 함평군 해보면 모평마을 쌍굴에서 말로 하기도 힘들고, 글로 쓰기도 힘든 잔혹한 학살과 행동이 있었다. 그 날 함평군 해보면 모평마을에서 5중대에 의해 민간인 130명이 학살당했다. 군인들은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산기슭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주민들을 불러낸 뒤 130명을 총살했다. 성대마을이 먼저 당했다. 그 다음 모평마을이 당했다.

그 때 이금남씨의 할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모두 희생 당하고 이금남씨만 살아남았다. 아버지는 만주에 계셨다.

1월 14일 오전 11시경 5중대 군인들이 모평 마을로 들어왔다. 군인들은 총을 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쌍굴 앞에 모아놓고 기관총을 발사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둠벙에 빠뜨렸다. 둠벙 속에 시체가 차곡차곡 쌓였다. 둠벙 물이 시뻘겋게 됐다. 둠벙에는 시뻘건 살얼음이 얼었다.

이금남씨는 군인들이 떠나고 난 뒤 둠벙 속에서 살아나왔다. 피가 섞인 얼음이 온 몸을 덮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얼어서 얼음이 서걱거렸다. 그녀가 둠벙에서 걸어나오자 동네 친척 아주머니가 그녀를 알아보고 마을로 데리고 갔다. 마을은 이미 다 불타버린 후였다. 그녀는 넋이 나가 버렸다. 아주머니 집에서 아주머니가 물을 뎊혀서 그녀를 씻겨주었다. 이금남씨는 정신이 돌아오자 “엄마, 나는 어치게 사까, 어치게 사까.”하고 서럽게 울었다. 가족을 모두 잃고 고아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날의 일이 평생 머리를 떠나지 않고 그녀를 괴롭혔다. 자다가 꿈속에서도 그 날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1951년 18세가 되던 해, 윤기병(90)씨와 결혼해서 해보면 모평마을에서 살았다. 멀리 떠나버렸다면 고통이 덜했을텐데, 평생을 그 기억으로 고통받으면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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