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양민학살사건의 기억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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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양민학살사건의 기억 (13)
  • 글/백은하 소설가
  • 승인 2019.04.29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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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여자유격대원이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아가셨다.”
함평양민학살사건 생존자 이계준씨

[투데이광주] 이계준씨는 1933년생이다. 이계준씨의 집은 전남 함평군 나산면 우치길 109이다. 그는 함평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광주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함평군 나산면사무소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했다.

1950년 당시 그는 광주에서 광주공업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1950년 12월 10일 공비들이 마을 앞 도로를 파헤친 것을 주민들의 소행이라면서 국군 11사단 5중대가 함평군 나산면 외치리에서 21명의 주민을 공동묘지로 불러내 총살했다. 그 때 그의 어머니가 희생되셨다. 군인들이 마을의 집에는 불을 질렀다.

좌익 계열 사람들과 건강한 사람들은 모두 피해버리고 노약자, 어린이들만 남아있다가 당했다. 그들은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좌익 계열 사람들에게 밥 한끼 해 준 것밖에 없었는데, 좌익계열 여자 유격대원이라는 누명을 썼다. 현재도 국가서류에 그의 어머니는 좌익계열 여자유격대원으로 남아 있다. 이계준씨는 그 부분을 바로잡고 싶다고 말했다.

이계준씨는 수년간 함평사건유족회 활동을 했다. 서울에 가서 데모도 했다. 함평사건유족회 이사들이 돈을 내서 위령제를 지내오다가 현재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조를 해 주고 있다. 2005년 함평사건유족회는 전남 함평군 나산면 우치리 마을 앞 희생 장소에 표지석을 세웠다.

이계준씨는 함평군과 나산면사무소에서 근무를 했다. 평생 자녀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이계준씨의 자녀들은 다행히 연좌제 피해를 받지 않고 공무원에 임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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