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양민학살사건의 기억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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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양민학살사건의 기억 (11화)
  • 글 / 백은하 (소설가)
  • 승인 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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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들은 모두 빠져 나가 버렸다. 민간인들만 무참하게 당했다.”
함평양민학살사건 생존자 정진두씨
함평양민학살사건 생존자 정진두씨


[투데이광주] 정진두씨는 1936년생이다.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왔다. 1950년 12월, 정진두씨는 광주에서 광주서중을 다니고 있었다.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서 월야 고향집에 내려와 있었다. 남살뫼학살은 1950년 12월 7일에 일어났다. 남살뫼학살이 일어난 배경이 있다.

1950년 12월 6일, 국군 11사단 5중대 1개 소대가 전남 함평 해보에서 한새들을 교류해서 삼서면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국군 1개 소대가 지나가다가 들에서 일하는 농부로 변장한 빨치산 부대와 만났다.

군인과 빨치산 부대의 교전이 있었다. 거기서 군인 두 명이 죽었다. 5중대 군인 둘이 죽으니까 군인들이 약이 올랐다. 그런데 그날 저녁 빨치산들은 월야 목간마을에서 꽹과리, 징 등을 치면서 승전 굿을 벌렸다. 당시 오수산과 월악산으로 빨치산들의 봉화가 왔다했다. 그날 밤 빨치산들이 승전 봉화를 올렸다. 그래서 남살뫼가 집중적으로 당했다.

당시 함평 월야 소재지로 관통하는 舊길이 있었다. 舊길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라고 5중대가 마을 집단 학살을 시작했다. 5중대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무참하게 죽였다. 빨치산들은 모두 빠져나가버리고 민간인들만 무참하게 당했다.

함평사건유족회에서 함평군 월야면 정산리에 1950년 12월 당시 월야에서 전사한 군인 두 명의 전사비를 세웠다.

정진두씨는 함평양민학살사건의 처리 문제에서 “우리 살아 생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때 수혜세력이 곳곳에 있다. 이것을 정치하는 사람들이 악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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