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광주의 문화·역사가 살아 숨쉬는 '광주 전통문화관'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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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 광주의 문화·역사가 살아 숨쉬는 '광주 전통문화관'을 찾아서
  • 정성환 기자
  • 승인 2021.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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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과 어우러진 문화·역사공간...배울거리, 볼거리 가득
무등산 봉우리 이름을 딴 서석당, 입석당, 새인당 등 다채
운림동 증심사 가는 길 소재

[투데이광주전남/정성환의 문화역사 이야기19] 정성환 기자 = 이번 이야기는 예향 광주의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광주 전통문화관' 편이다.

광주 전통문화관은 무등산과 어우러진 문화역사 공간으로 배울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하고 무등산 봉우리 이름을 딴 서석당, 입석당, 새인당 등이 다채롭다.

광주전통문화관 [정성환기자]
광주 전통문화관 [정성환기자]

광주 전통문화관은 우리의 옛것을 보고, 배우고, 즐기는 문화공간으로 2012년 2월 9일 문을 열었다. 무등산 봉우리의 명소 이름을 딴 서석당, 입석당, 새인당과 야외공연장 ‘너덜마당’이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전통문화관/솟을대문 [정성환 기자]
전통문화관/솟을대문 [정성환 기자]

전통문화관에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출입문인 ‘솟을대문’이 반긴다.

‘솟을대문’은 사대부 집에서 양옆 행랑채보다 중앙지붕을 높게 올려서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설치한 대문으로 양반가의 권위를 상징한다.

전통문화관의 솟을대문과 서석당, 새인당은 무송(撫松) 현준호(1889∼1950) 선생의 전통 한옥 ‘학선재’에서 연유한다.

이 한옥은 선생의 부친인 학파 현기봉의 재실(齋室)과 주거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1930년부터 31년간에 걸쳐 광주시 동구 학동에 지었던 전통 한옥으로 선생의 호를 따 무송원(撫松園)으로 불리어 오다가 2008년 재실 상량문에서 ‘학선재’라는 명칭이 발견되어 건물 이름이 학선재(鶴仙齋)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도시개발계획으로 이 전통 한옥이 철거될 처지에 놓이자 광주은행이 이 전통 한옥을 후손들로부터 증여받아 1997년부터 전남 화순 동면에 옮겨 세워 광주은행 직원들의 연수원으로 사용하다 광주광역시에 기증했다.

이후 화순 동면에 있는 건축물을 현 위치에 다시 옮겨 세워, 무송 현준호 선생의 ‘학선재’는 광주 전통문화관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서석당/대공연장
서석당/대공연장 [정성환 기자]

서석당(瑞石堂)은 무등산 서석대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며, 상서로운 집이라 하여 ‘서석당’이라 이름 지었다.

서석당 건물을 앞쪽에서 보면 두 개의 건물이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이다.

처마 끝도 빗물이 떨어질 때 돌아가면서 빠르게 흐르도록 곡선형으로 지어졌다.

서석당 건물은 주거공간으로 정면에 돌출한 현관은 보기 드문 건축양식이라 할 수 있으며 처마와 용마루가 뒷산 능선과 대칭되어 있어 무등산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원래 서석당은 4마리의 학(학산면, 학계리, 학동, 학선재)이 비상하는 형국의 건축물이었으나 이곳으로 옮겨 지을 때 대지가 비좁아 서석당의 한쪽 날개가 없는 형태로 지었다고 한다.

새인당 [정성환 기자]
새인당 [정성환 기자]

‘새인당’은 무등산 새인봉에서 따온 이름이다. 새인봉은 봉우리 모양이 임금의 옥쇄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에서 유래한다.

새인당은 원래는 현준호 선생의 조상을 모신 재실로 사용되었다.

십이율려/전통음악 음계 [정성환 기자]
십이율려/전통음악 음계 [정성환 기자]

십이율려/전통음악 음계

서석당과 입석당 사이를 걷다 보면 바닥 면에 황종, 대려, 태주, 협종 등 잘 알려지지 않은 12개의 용어가 쓰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전통음악의 12개의 음계인 12율려이다.

12율려는 여섯율과 여섯려로 구성되어 있으며 율은 남성을, 려는 여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바닥을 보면 덩굴이 꼬이며 뻗어 나가는 무늬인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들어온 문양이라고 하며, 버금아(亞) 문양은 선비 집 문 앞에 많이 쓰는데, 바르게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입석당/교육공간 [정성환 기자]
입석당/교육공간 [정성환 기자]

입석당(立石堂)은 무등산 입석대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며 각종 전시회 및 교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너덜마당/야외공연장 [정성환 기자]
너덜마당/야외공연장 [정성환 기자]

야외공연장은 무등산의 ‘너덜’에서 그 이름을 따 ‘너덜마당’이라 하며 각종 야외공연을 할 때 사용한다. ‘너덜’이란 돌이 많이 깔린 비탈을 말한다.

무등산 ‘너덜’은 주상절리대가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거쳐 형성된 것으로 ‘덕산너덜’과 ‘지공너덜’ 등 6개의 ‘너덜’이 있다.

야외공연장에서 무등산 쪽을 바라보면 돌밭처럼 보이는 것이 ‘덕산너덜’이다.

이 너덜이 형성된 이래 지금까지 너덜의 면적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 넝쿨이나 이끼로 인해 세월이 흐르면 돌들을 다 덮어버리는데 무등산의 너덜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돌들이 서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덕산너덜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움직임이 있어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신비스러운 이 너덜은 39개의 풍혈(風穴)이 있어 여름에는 찬바람,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고 한다.

광주의 수호신이며 진산이라 불리는 ‘무등산’은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 하여 무등산이라 불렸으며 무등산 권역은 화산활동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광주시민에게 보여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산봉우리에 솟아오른 거대한 주상절리이다.

특히 주상절리는 3~400m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무등산은 지난 2018. 4. 12.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전수관 [정성환 기자]
무형문화재 전수관 [정성환 기자]

무형문화재 전수관은 필장, 악기장, 나전칠장, 탱화장, 화류소목장, 대목장, 남도의례 음식장 등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의 작품활동과 대표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써 체험과 공연, 전수 교육 등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전통문화관/전시관 [정성환 기자]
전통문화관/전시관 [정성환 기자]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나전칠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0호)/김기복, 기능보유자

나전 칠은 옻칠을 한 표면에 소라, 전복, 조개 등을 이용하여 문양을 만들어 붙인 공예품으로 오색영롱한 자연색과 은은한 광택이 잘 조화된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나전칠기를 만드는 과정은 먼저, 나무로 만든 물건 위에 옻칠하면 검은빛의 윤기가 나고 잘 썩지 않아 물건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옻칠이 끝나면 조개껍데기를 0.5mm 정도로 말끔하게 다듬은 후 물에 불려 뜨거운 인두로 다려 판판하게 편다.

이것을 나전이라 한다. 완성된 나전을 장식할 모양대로 오려 끼우거나 아교나 풀로 붙인다.

광주는 칠과 먹, 목탄이 많이 생산되어 3흑(黑)의 고장으로 일컬어졌으며 사적 375호인 신창동 유적에서 칠기 용기와 도구가 발견되어 칠공예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김기복 나전 칠장은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19세부터 광주에 살면서 60여 년 넘게 나전칠기의 맥을 잇고 있으며, 나전과 칠 제작기법과 조형미가 뛰어난 명인이다.

특히 나무에 자개를 붙이는 방식이 아닌, 모시나 삼배를 심으로 하여 칠을 입혀 말리는 ‘건칠’기법에 능하다.

나전칠기를 만드는 과정에는 목수, 나전, 칠 등 각자의 분야가 있으나 김기복 나전 칠장은 이 3가지를 모두 습득하여 혼자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 시키는 기본원칙을 고집한다.

악기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호)/이춘봉,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악기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호)/이춘봉,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악기장은 전통음악에 쓰이는 악기를 만드는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하며 현재 우리나라 국악기는 약 60~70종으로 가야금과 거문고가 가장 대표적이다.

악기장은 전통악기의 주재료인 나무와 가죽, 명주실, 대나무, 쇠, 톱 등을 이용해 악기를 설계하고 만들어 각 악기가 지닌 특유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능인이라는 점에서 일반 공예 영역의 장인과 구분된다.

가야금은 보통 오동나무를 사용하여 만드는데, 일반적으로 현악기는 다른 국악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과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가야금 제작 과정은 오동나무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2~3년간의 자연 건조, 인두질, 다양한 장식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여러 줄의 명주실을 꼬아 현을 걸고 음을 맞추면 비로소 공정이 마무리된다.

이춘봉 악기장은 주로 봄, 가을에 악기를 제작하며 윗판과 밑판을 따로 만들지 않고 나무 원통을 파서 만든다.

악기의 생명은 울림통에서 나오는 소리이기 때문에 울림통을 만들 때 더욱 정성을 다한다.

대표 작품으로는 오동나무를 통째로 파서 상판과 뒷 판을 없애고 한 판으로 만든 가야금인 ‘백년금’이 있다. 그의 주 종목인 가야금, 거문고 등 현악기 제작은 물론 북, 장고, 대금 등을 만들며 우리 음악과 악기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악기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호)/이복수,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악기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호)/이복수,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이복수 악기장이 제작하는 작품은 현악기, 관악기 등 대략 27종 50여 가지이다.

현악기 중 거문고, 가야금, 아쟁, 해금이 주요 작품이다.

가야금의 상판 재료인 울림이 좋은 참오동나무는 거문고, 가야금, 아쟁 등 현악기는 물론 장구의 울림통(공명통)으로도 적합하다.

오동나무는 선비의 지조를 나타내는 나무라고도 한다.

오동나무에 얽힌 얘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져 오고 있다.

옛날에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어 결혼할 때 옷장을 해 간다는 말이 있는데, 오동나무는 옷장을 만들 정도로 크게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오동나무를 심는 이유는 우리 집에 결혼 적령기 딸이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탱화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1호)/송광무,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탱화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1호)/송광무,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탱화는 종이나 비단 또는 베에 오방색인 청‧황‧적‧백‧흑의 다섯 가지 색을 조화시켜 불교 신앙의 소재와 교리를 경건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그림을 말하며, 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화승 또는 탱화장이라 한다.

탱화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유입되기 시작한 삼국시대 때부터 시작되어 조선 후기 전쟁으로 파괴된 사찰들을 새로 고치면서 더욱 성행했다.

탱화는 종종 사찰에서 쓰이는 모든 그림을 의하는 불화(佛畫)와 혼용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는 법당에 예배용으로 걸어 놓기 위한, 좁은 의미의 불화만을 가리킨다.

유독 사찰이 많은 전라도 지역은 뛰어난 화승(畵僧)이 많이 배출되었다.

송광무 장인은 어려서부터 탱화장인 부친으로부터 탱화 제작법을 배웠으며, 탱화에 사용하는 물감 재료는 천연 전통염료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필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안명환,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필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안명환,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필장이란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붓을 만드는 사람 또는 기술을 말한다.

붓대는 시누대로 만들며, 대 붓에는 수컷 염소털, 중 붓에는 족제비 꼬리털, 세필 붓에는 청솔모 꼬리털을 이용한다.

안명환 필장이 제작하는 붓은 산수필, 서예붓, 황모붓, 삼동필 등이 있다.

‘삼동필’은 안명환 필장이 휴대하기 편리하게 만든 붓이다.

붓 3개가 1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 붓 뒤에는 중 붓을, 중 붓 뒤에는 세필 붓을 차례로 꽂아놓으면 하나의 붓처럼 된다.

진다리 붓은 백운동 일대에서 만들어진 붓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는 안명환의 부친인 안종선이 백운동에서 운영하였던 ‘진교필방’의 ‘교’자를 안명환이 ‘다리’로 바꿔“진다리”로 칭한 붓의 이름이라고 한다.

필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문상호,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필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문상호,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문상호 필장은 닭털, 꿩털 등 동물의 털과 볏짚, 대나무, 칡, 신생아의 머리카락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붓을 만든다.

그의 특별한 작품인 태모필(胎毛筆)은 신생아가 6개월 후 처음 자르는 머리로 붓을 만드는 데 실제적 사용 목적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한다. 즉 태모를 이용하여 붓을 만들면 아이가 무병장수하고 문운(文運)이 상승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특허받은 ‘죽필’은 대나무를 쪼개어 만든 붓인데 제작 기간이 많이 소요되며 글씨를 써보면 붓끝에 힘이 있고 그 수명도 길어 보통 10년 정도 쓴다고 한다.

‘갈필’은 칡넝쿨로 만든 붓으로 줄기가 곧고 일정한 두께를 가진 칡넝쿨을 채취하여 끝부분을 두들겨서 만든 붓이다.

‘갈필’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지방 출장 중에 글씨를 쓸 일이 생겼는데 붓이 없어 하인에게 글씨를 쓸 수 있는 도구를 구해오라 하였는데 하인이 칡넝쿨을 잘라서 그 끝을 돌로 찧어 붓처럼 만들어 전달하였다고 하며 추사가 최초로 갈필로 글을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화류(樺榴)소목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3호)/조기종,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화류(樺榴)소목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3호)/조기종,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목수라고도 하는데 목수에는 대목장과 소목장이 있다.

이 가운데 나무로 목기, 목가구 등을 제작하는 사람을 소목장이라 한다.

소목장은 건축의 구조물이 아닌 실내에 비치되는 목조 가구나 목조 기물을 짜는 목수이다. 책장, 찬장, 문갑, 경대, 장, 농 등을 제작한다.

조기종 명인은 화류 목(모과나무)의 무늬와 결을 살리기 위해 400년이 넘는 화류목을 천연 칠을 하여 가구 등을 제작한다.

제작기법은 통 가구에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45도 각으로 맞붙는 ‘연귀짜임’의 전통기법을 사용한다.

이 기법은 어떤 온도·습도에서도 나무들끼리 축소·팽창이 자유로워 가구가 튼튼하다.

소목장은 무늬가 있는 나무를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미를 최대한 살려내는 전통 목공예기법으로 민속 공예사적 가치가 크다.

대목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9호)/박영곤,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대목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9호)/박영곤,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일에 조사하는 사람을 목수 또는 목공이라고 한다.

목공 일은 대목과 소목으로 구분되며 이 가운데 대목 일을 하는 목공분야의 기술 총책임자를 대목장이라고 한다.

대목 일은 건물의 주된 골조공사(기둥, 봉, 연목(서까래), 추녀 등)를 하는 일이다.

주로 궁실, 성곽 등을 짓는 목수를 궁궐 목수라 하였으며, 민가를 짓는 목수는 일반적으로 목수라고 했다.

대목장은 목수 중에서 궁궐이나 불전 또는 가옥을 짓는 건축과 관계된 일을 하는 장인으로서 기술설계는 물론 공사의 감리까지 겸하는 목수로 궁궐이나 사찰 등을 건축하는 도편수를 지칭하기도 한다.

대목장은 지금의 건축가를 일컫는 정통적인 명칭이라 할 수 있다.

박영곤 대목장은 주로 전통 가옥뿐만 아니라 불교건축에 깊은 관심을 보여 해인사의 백련암을 비롯한 여러 암자와 나주 불회사 극락전 등 사찰의 법당과 요사채를 설계했다.

독특한 다락 건축양식을 개발하여 서서 다닐 만큼 공간을 넓힐 수 있었고, 창문을 만들어 햇볕의 따스함이 목조의 아늑함을 더해주도록 설계했다.

그의 전통 한옥 작품은 투박하고 견고하며 중후한 멋을 풍긴다.

남도의례 음식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최영자.이애섭·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남도의례 음식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최영자.이애섭·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남도지방은 예로부터 온화한 기후, 비옥한 토양, 넓은 해양을 끼고 있어 농산물과 수산물이 풍부하여 다양한 음식 조리법이 발달했다.

의례 음식은 첫돌, 혼례, 환갑 등 경사스러운 날과 제사 때 차리는 특별음식을 말한다.

이러한 의례 음식들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승·보급되었다.

남도지방의 사대부 집안의 폐백 음식과 이바지 음식 등이 전통음식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특히 문어와 오징어를 이용한 ‘봉황오리기’ 기술과 천연 조미료를 사용한 육포, 부각 등의 제조 비법은 음식의 맛을 깊고 담백하게 해준다.

최영자 명인은 남도 음식문화의 대모로 추앙받던 고 이연채의 후계자로서 남도전통 음식 기능을 6대째 전승하고 있으며, 전통의례 음식 상차림인 이바지, 폐백, 신선로, 건포류, 부각, 한과류, 약밥, 전통주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리기법을 보유하고 있다.

이애섭 명인은 울산 김씨 종갓집 며느리로 남도의례 음식 중 폐백 음식과 이바지 음식 분야에서 전통혼례 음식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폐백 음식 중 문어와 오징어를 이용한 ‘봉황오리기’와 ‘곶감오리기’는 솜씨가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고배상(고임상) [정성환 기자]
고배상(고임상) [정성환 기자]

‘고배상’은 큰 잔치 때, 과일이나 떡 과자 같은 음식을 보기 좋게 높이 괴어 올려 차린 큰상으로 ‘고임상’이라고도 하며, 높이 괴는 것을 고배(高排)라고 한다.

괴는 음식은 계절에 따라서 또는 가풍이나 형편에 따라서 다르나 음식의 가짓수와 괴는 높이의 치수는 홀수로 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남도의례음식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양영숙. 민경숙,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남도의례음식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양영숙. 민경숙, 기능보유자 [정성환 기자]

양영숙 남도의례 음식장은 외조모와 모친으로부터 전통의례 음식을 3대째 이어오고 있다.

특히 떡의 향토성과 고유성을 중요시하여 전승하고 있으며, 남도 지역의 향토 음식과 ‘오징어오림’, ‘해물오림’ 등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역의 특성을 갖는 전통의례 음식의 맥을 잇고자 후학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민경숙 남도의례 음식장은 모친에 이어 6대째 남도의례 음식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남도의례 음식 중 떡, 과정류, 장류의 전통성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의례 음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폐백, 이바지 음식에 독보적인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의례 음식 중 과정류는 혼례, 회갑례, 제례 등 여러 의례에서 격조 높은 중요한 음식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폐백과 이바지 [정성환 기자]
폐백과 이바지 [정성환 기자]

이바지는 혼례를 전후하여 신부 쪽에서 예를 갖추어 신랑 쪽으로 정성 들여 만들어 보내는 음식이다.

폐백은 혼례를 치른 후 신부가 시부모님과 시댁 어른들께 첫인사를 드리는 예다.

폐백과 이바지 음식들은 각 지방이나 가정에 따라 풍습이 다를 수 있으나 지금은 결혼식 후 폐백을 함께 하는 관계로 격식을 갖추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부 인사가 끝나면 신랑 측 어르신이 밤·대추를 신부 치마폭에 던져주는 풍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밤 대추의 의미는 어른을 잘 공경하고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것이라 한다.

육포의 의미는 신부가 시어머니께 절을 올리면 시어머니는 육포 위에 손을 얹어 쓰다듬으며 며느리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라고 하며, 육포는 새 며느리를 상징하고 며느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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