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기정진 선생, 의(義)로운 실천정신 깃든...'장성 고산서원(長城 孤山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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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기정진 선생, 의(義)로운 실천정신 깃든...'장성 고산서원(長城 孤山書院)'
  • 정성환 기자
  • 승인 2021.10.17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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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의 주인공
600여 명의 제자 양성 ‘노사학파’ 시조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과 함께 조선 성리학 6대가 기록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 태동,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장 평가

[투데이광주전남=정성환의 문화역사이야기14] 이번 문화역사이야기는 "학문으론 장성(長城)만 한 곳이 없다"는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의 주인공이자,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인 노사 기정진 선생의 의(義)로운 실천정신이 깃든 '장성 고산서원(長城 孤山書院)'편이다.

고산서원 전경/전남 장성군 진원면 고산리 소재 [정성환 기자]
고산서원 전경/전남 장성군 진원면 고산리 소재 [정성환 기자]

△ 노사 기정진(蘆沙 奇正鎭, 1798~1879)

전남 장성군 진원면 고산리에 세워진 고산서원은 노사 기정진 선생이 1878년 78세 때 이곳으로 이사한 후 정사(精舍)를 지어 ‘담대헌(澹對軒)’이라 이름 짓고 학문에 전념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곳이다.

△ 노사 기정진(蘆沙 奇正鎭, 1798~1879) [정성환 기자]

1883년(고종 20) <노사집>이 간행되고 1910년(순종 4) 문간(文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927년 후손들이 고산서원이라는 편액을 걸어 중건했으며 1994년 사당과 주변을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고산서원 공간은 외삼문, 강당, 거경재, 집의재, 내삼문, 고산사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인 고산사에는 노사 기정진을 비롯해 그의 제자인 김석구, 정재규, 정의림, 기우만, 조성가, 이최선, 김녹휴, 조의곤 등 아홉 분의 신위를 배향하고 있다.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 [정성환 기자]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 [정성환 기자]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란 “학문으로는 장성(長城)만 한 곳이 없다”라고 뜻으로 흥선대원군이 조선 팔도 중 장성의 학문을 최고로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는 장성 출신 노사 기정진의 높은 학문에서 연유하는데, 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청나라 사신이 우리나라에 와서 조선의 학문을 시험하기 위해 “용단호장 오경누하 석양홍(龍壇虎長 五更樓下 夕陽紅)”이라는 글귀를 내놓고 이에 댓구(對句)를 맞추라는 문제를 낸다.

‘용단호장’은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라는 뜻이고 ‘오경누하 석양홍’은 ‘깊은 밤중 누각 아래 석양빛이 붉다’라는 뜻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문장이기에 아무리 유능한 조정의 대신들이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급기야 신동으로 명성이 널리 알려진 장성의 노사 기정진 선생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고산서원(孤山書院)/전남기념물 제63호 [정성환 기자]
고산서원(孤山書院)/전남기념물 제63호 [정성환 기자]

노사는 문제를 한참 동안 분석한 후 두 글은 모두 ‘해(日)’를 주제로 표현한 것임을 알아차리고 거침없이 “하원서방 구월산중 춘초록(畵圓書方 九月山中 春草綠)”이란 댓구(對句)를 쓴다.

“용은 겨울철에 해가 뜨는 시간으로 짧고, 호랑이는 여름철에 해가 뜨는 시간으로 길다”라는 뜻이며, 오경루는 중국에 있는 누각으로 석양의 경치를 노래한 것인데, 조선은 “구월산에 새로 돋아나는 봄풀이다”라는 뜻이다.

해를 그림으로 그리면 둥글고, 글로 쓰면 네모나다(日). 용호(龍虎)는 시간을 뜻하며, 용은 진시(辰時, 아침 7~9시경), 호랑이는 인시(寅時, 아침 3~5시경)이다.

고산서원/외삼문=산앙문(山仰門) [정성환 기자]
고산서원/외삼문=산앙문(山仰門) [정성환 기자]

이 명쾌한 문장을 본 청나라 사신과 조정의 대신들은 천재적인 해석과 답에 감탄했고, 철종 임금도 노사 기정진의 지식에 탄복하여 “장안의 많은 눈이 장성의 외눈만 못하다”라는 “장안만목 불여장성일목(長安萬目 不女長城一目)”이란 칭송의 말을 남겼다.

‘장성일목(長城一目)’은 당시 한쪽 눈을 잃은 노사 기정진 선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의 출처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고산서원/동재=거경재(居敬齋, 항상 반성을 통해 몸가짐을 신중히 하라는 뜻) [정성환 기자]
고산서원/동재=거경재(居敬齋, 항상 반성을 통해 몸가짐을 신중히 하라는 뜻) [정성환 기자]

조선 성리학의 6대가로 추앙을 받았던 노사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은 1798년(정조 22) 전남 순창군 복흥면 조동에서 태어나 장성에서 자랐다.

본관은 경기도 행주,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그의 가문은 주기론의 대표적 인물인 고봉 기대승을 배출한 호남의 명문인 행주 기씨이다.

기정진의 10대조는 기묘명현 기준의 둘째 형 기원이고 아버지 기재우는 장성군 하남에 거주했다.

그의 어머니는 금빛 얼굴을 가진 큰 사람이 남자아이를 안고 오는 꿈을 꾼 뒤 12개월 만에 그를 낳았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지력을 소유한 천재였다.

4~5세에 이미 글을 터득하고 <효경>과 <격몽요결> 등을 독파했다.

판단력과 행실도 단정하여 이웃집 과일이 자기 집 마당에 떨어지면 모두 주워서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다섯 살 때 천연두를 앓아 왼쪽 시력을 잃었으나 10대 초반 이미 소학과 경서, 역사서를 통독했다.

그의 천재성은 일곱 살 때 지은 <영천 詠天, 하늘을 읊음>에서 수인선악보시속(隨人善惡報施速, 하늘은 인간의 선과 악에 따라 즉시 상을 내리고 벌을 준다는 뜻)이란 글을 썼다고 하니 일곱 살에 이미 세상의 이치를 터득한 천재였다 할 수 있다.

고산서원/서재=집의재(集義齋) [정성환 기자]
고산서원/서재=집의재(集義齋) [정성환 기자]

18세에 양친을 잃고 선대의 고향인 전남 장성 하남으로 이주하여 부모님의 삼년상을 치렀다.

가난한 선비였던 노사는 인근의 여러 고을을 전전하면서 장년기를 보냈다.

백양사 등의 산사에서 독서와 학문연구에 전념하여 부친의 유언에 따라 34세에 사마시(문과 소과)에 장원으로 합격했으나 대과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고산서원묘정비 [정성환 기자]
고산서원묘정비 [정성환 기자]

그의 관직 생활은 1842년 ‘전설사별제(정6품)’로 6일 근무한 것이 전부다.

높은 명성 때문에 사헌부 집의, 동부승지, 호조 참판 등 40여 차례나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정진했다.

노사가 가장 오래 거주한 곳은 하사리(현, 장성군 황룡면 장사리)다.

65세 이후 13여 년을 이 넘도록 하사리에 정착하면서 제자를 양성하고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하사리 노사의 문하에서 수학한 송사 기우만이 기정진의 손자이고, 15세의 학동이었던 매천 황현이 노사를 찾아와 학문을 수학했던 곳도 하사리다.

노사(蘆沙)라는 아호는 78세에 ‘노령산 아래 하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 무렵 지은 것이다.

고산서원/내삼문 [정성환 기자]
고산서원/내삼문 [정성환 기자]

특히 그의 학문은 스승으로부터 물려받거나 학맥에 의존하지 않고 중국 송 대의 성리학을 연구해 300여 년간 계속된 우주 현상을 이와 기로 설명하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극복하고, 인간의 심성과 도덕의 문제를 기(氣)가 아닌 이(理)의 작용으로만 가능하다는 그의 독창적인 이론을 정립했다.

장서각, 경장각/1985년 설립, 노사문집 목판 980매, 노사집 12편 등 소장. [정성환 기자]
장서각, 경장각/1985년 설립, 노사문집 목판 980매, 노사집 12편 등 소장. [정성환 기자]

“이(理)는 하나지만 수많은 형태로 나뉜다”.

모든 현상계의 작용은 기(氣)이지만 일체의 기(氣)의 작용은 이(理)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며 “이가 기의 근원이며, 기발이 곧 이발이요, 기행이 곧 이행이다”라고 주장하고 이(理)에 절대성을 부여한 유리론(唯理論) 즉, 독창적인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을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이황과 이이의 사상을 뛰어넘어 기(氣)를 중시하는 주기론과 기(氣)의 존재를 일부 인정하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부정하고 독창적인 이(理)의 철학 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답문유편(答問類編,왕복서찰 문답집)/노사집(기정진의 문집) [정성환 기자]
답문유편(答問類編,왕복서찰 문답집)/노사집(기정진의 문집) [정성환 기자]

이러한 그의 독보적인 사상과 철학은 사단칠정을 논한 <우기 遇記>, 그의 핵심철학<납량사의 納凉私議>, <이통설 理通設>, 태극도설에 나오는 정(定)자에 대한 해설인 <정자설 定字說>, 80세에 발표한 <외필 猥筆>, 제자들과 문답을 기록한 <답문유편 答問類編> 등의 저서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남량사의, 納凉私議>는 여름에 피서가서 쓴 노사 선생의 논문으로 그의 주리론(主理論)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난 것으로 평가된다.

매천 황현은 이 글이 당시 학자들의 이론을 모두 뒤엎을 정도라고 격찬했다.

노사전집 및 답문류편 목판/ 전남 유형문화재 제214호 [정성환 기자]
노사전집 및 답문류편 목판/ 전남 유형문화재 제214호 [정성환 기자]

<이통설,理通說>은 율곡 이이의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을 비판한 것으로, 이(理)에 절대성과 영원성을 부여하고, 인간과 사물의 모든 현상은 이(理)의 운동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이황의 ‘이발(理發)인정하고 율곡 이이의 기발(氣發)은 부정했다.

<외필 猥筆>은 별세하기 1년 전인 1878년에 작성한 ‘외람되게 쓴 글’이라는 저서로 운동하는 것은 기(氣)이지만 그렇게 만드는 것은 이(理)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氣)의 자발성을 부정하고 이(理)의 절대성을 주장하며 이황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율곡 이이의 주기론(主氣論)을 비판했다.

노사 선생 임술의 책 요약 비문 [정성환 기자]
노사 선생 임술의 책 요약 비문 [정성환 기자]

노사 기정진은 초야에 묻혀 강학과 저술에 몰두했으나 농민의 어려운 삶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1862년(철종 13)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나자 그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임술의책 壬戌疑策>을 써서 삼정(三政)의 폐단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 잡을 방안을 제시하려 했으나 조정의 지시에 따라 상소할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임술년 농민들이 민란을 일으킨 이유를 “농민이 먹을 젖이 없어 우는 소리”라고 규정했으며 농민의 항쟁 이유를 삼정의 문란으로 판단하고 그 폐해를 바로잡을 것을 역설한 것이다.

고산서원 사당/고산사(孤山寺) [정성환 기자]
고산서원 사당/고산사(孤山寺) [정성환 기자]

1866년(고종 3) 병인양요(1866, 고종 3)가 발생하고 조선은 총체적 난국에 시달렸다.

이에 노사 선생은 서양세력의 침략을 염려하고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조소(六條疏)라 불리는 첫 번째 <병인소>를 올렸다.

이 상소의 내용은 “나라 안에서는 정치를 제대로 하고, 나라 밖의 외적은 반드시 물리쳐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상소는 외침에 대한 방비책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하면서 민족주체성의 확립을 주장한 것으로 당시 대원군의 수교통상거부정책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그 뒤 전개된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의 사상적 토대가 된다.

이후 두 번째 <병인소>를 올린다.

그 내용은 국가적 폐습을 준엄하게 비판하고, 지도층인 사대부에게 청렴결백한 기품이 없음을 우려해 삼무사(三無私)를 권장하도록 강조한 것이다.

‘삼무사’란 공자가 사심이 없는 세 가지에 대해 말한 것으로, 하늘, 땅, 해와 달처럼 사심이 없이 천하를 위해 봉사하는 일로써 지극히 공평한 것을 뜻한다.

고산사/노사 기정진 선생 신위 [정성환 기자]
고산사/노사 기정진 선생 신위 [정성환 기자]

위정(衛正)은 성리학적 질서이고, 척사(斥邪)는 타 종교사상의 배척한 것으로 중국의 화이사상(華夷思想)이 원류다.

이러한 사상은 세상을 우열로 양분하는 배타적 사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망국의 위기 속에서 자주적 민족주의로 승화되어 조선 의병사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노사 선생의 손자 기우만과 종손 기삼연 등 일제에 항거한 ‘한말의병장’의 탄생은 노사 기정신 선생의 실천정신이 가져온 결과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노사 선생의 <임술의책>과 <병인소>는 현실적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실천의식의 발로이며, 행위와 실천이 없는 관념론적인 이론은 진리가 아니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진리는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상소문이라 할 수 있다.

고산서원 입구 비석 군 [정성환 기자]
고산서원 입구 비석 군 [정성환 기자]

1876년 조선은 불평등 조약인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이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되자 노사 기정진은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며 붓과 벼루를 물리치고 절필하지만, 면암 최익현(1833~1906)이 도끼를 들고 궐문에 나아가 조약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는 소식을 듣고 “동방에 사람이 없다는 비웃음을 피할 수 있겠다”라며 기뻐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정진과 최익현은 위정척사운동의 이론과 실천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였다.

이 상소 때문에 흑산도로 유배 간 최익현은 3년 뒤인 1879년 풀려나 장성의 담대헌(澹對軒)을 찾아 노사 선생을 예방하고 1901년에는 기정진의 ‘신도비문’을 짓는다.

황룡강 생태 공원 [정성환 기자]
황룡강 생태 공원 [정성환 기자]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인 성리학은 이론의 이상주의적 관념성 때문에 실천정신에 소홀했던 이유로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매몰된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노사 기정진 선생은 성리학의 관념론에서 벗어나 조선 후기 시대적 문제를 고민하며 성리학의 이론을 몸소 실천한 탁월한 성리학자였다.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기는 망국의 위기 속에서 그의 실천적 사상과 철학은 위정척사운동으로 승화되어 의병활동으로 이어졌다.

황룡강변 생태공원
황룡강 생태공원 [정성환 기자]

고려대학교 초대총장을 역임한 현상윤의 <조선유학사>에서 퇴계 이황, 율곡 이이, 화담 서경덕, 노사 기정진, 한주 이진상 선생을 조선 성리학 6대가로 기록하고 있다.

예조참판을 역임한 문장가 ‘김매순’은 노사 선생을 “본질과 응용이 구비 된 인물”로 칭송했으며, 구한말 유학자 이건창은 보성에 유배되었을 때 <노사집>을 읽고 “천하에 참다운 학문”이라고 격찬했다.

향기나는 엘로우시티 장성 [정성환 기자]
향기나는 엘로우시티 장성 [정성환 기자]

옐로시티 장성은 청백리의 주인공 관수정의 지지당 송흠을 시작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필암서원의 하서 김인후, 조선 성리학의 6대가 ‘고산서원’의 노사 기정진, 청백리를 상징하는 백비(白碑)의 주인공 ‘아곡’ 박수량, 화차를 발명하여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게 한 ‘봉암서원’의 ‘망암’ 변이중 선생 등 훌륭한 학자들을 배출한 청백리의 근원지이며 학문과 충신의 고장이다.

황룡강/황룡 조각상 [정성환 기자]
황룡강/황룡 조각상 [정성환 기자]

한국사에서 근대는 희망의 시기가 아닌 외세의 침략에 의한 혼란의 시기였다.

노사 기정진은 조선 성리학의 주리론(主理論)을 한층 더 심화시켜 성리학의 이상주의적 관념론에서 벗어나 위기에 처한 현실의 문제를 고민했다.

81세의 긴 생애 동안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면서 후학 양성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평소에는 학문에 열중하고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는 칼을 들라”는 실천을 강조한 위대한 사상가였다.

'문불여장성'의 근원인 노사 기정진 선생은 ‘담대헌’이란 명문사학을 만들어 6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했다.

노사 선생의 학풍은 후손과 제자들에 의해 6천여 명의 노사학파를 형성했으며, 그의 철학과 사상을 현재에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훌륭한 성리학자로 추앙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황룡강 생태공원 [정성환 기자]
황룡강 생태공원 [정성환 기자]

그러나 격동의 근대화 시기에 성리학과 위정척사운동은 시류에 편승하지 못한 학문과 사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모든 인간은 시대적 조건과 한계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는 조선 후기 외세의 침략에 굴하지 않는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을 태동시킨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장성호 수변길/출렁다리 [정성환 기자]
장성호 수변길/출렁다리 [정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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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진한 2021-10-18 10:08:27
    , 주변부 사상으로는 도가나, 음양가, 묵가사상등이 형성되었고, 법가사상은 이와는 다른 현실적인 사상이며,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진나라때 강성하고, 유교나 도교와 달리, 한나라때 율령이 반포되어 이후 동아시아에 유교와 별도의 성격으로 국가통치에 활용됨).

    ​@ 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http://blog.daum.net/macmaca/733

    http://blog.daum.net/macmaca/2967

    윤진한 2021-10-18 10:07:40
    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blog.daum.net/macmaca/3131

    @동아시아는 수천년 유교사회입니다. 공자님 이전의 始原유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 이전의 구약성서 시대에 해당됩니다. 하느님(天).神明,조상신 숭배가 유교의 큰 뿌리입니다. 유교는 국교로

    윤진한 2021-10-18 10:07:02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주권없는 패전국잔재 奴隸.賤民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일본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

    윤진한 2021-10-18 10:06:26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공자님의 시호.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圣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 참고로 하면,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啓聖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啓聖王夫人)이십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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