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 박광옥 선생의 충의정신을 기리는...'벽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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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 박광옥 선생의 충의정신을 기리는...'벽진서원'
  • 정성환 기자
  • 승인 202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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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 박광옥(朴光玉, 1526~1593)
조선시대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 선구자 기록
남구 칠석동-풍암지구 신암마을-남구 백운동 13km...'회재로' 명명, 충절 기려
벽진서원 외부 전경 [정성환 기자]
벽진서원 외부 전경 [정성환 기자]

[투데이광주전남=정성환의 문화역사이야기12] 이번 문화역사이야기는 회재 박광옥 선생의 충의정신을 기리는 '벽진서원'편이다.

회재 박광옥 선생은 조선시대 호남 3대 부자(보성 안방준, 해남 윤선도)로서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가뭄에 시달린 고을 주민을 위해 저수지(개산방죽)를 축조하고, 광주향교를 중수해 교육에 헌신했으며,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을 모집하고 무기와 군량미를 조달하여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섰다.

이러한 회재 선생의 애민(愛民)과 충의(忠義)정신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충신(忠臣)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남구 칠석동에서 시작하여 풍암지구 신암마을을 지나 남구 백운동까지 약 13km의 광주에서 가장 긴 도로를 회재 박광옥 선생의 호를 따 “회재로”라 명명하고 선생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벽진서원 입구 [정성환 기자]
벽진서원 입구 [정성환 기자]

박광옥(朴光玉, 1526~1593)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음성, 자는 경원, 호는 회재(懷齎)이다.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 회산마을에서 태어났다.

7세 때 부친을 여의고 묘 옆에 움집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할 정도로 효심이 지극했다고 한다.

벽진서원/홍살문 [정성환 기자]
벽진서원/홍살문 [정성환 기자]

10세 때 조광조 제자인 ‘정황’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에 정진하여 1546년(21세) 생원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혼자서 많은 재산을 보전하고 집안을 이끌고 가야 했기에 벼슬길에 나가지 못했다.

이후 매월동에 ‘개산송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으며, 1560년(35세) 광주향교를 중수하는 데 공헌하고, 학헌과 학규를 제정하여 유림으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또 가뭄에 시달린 주민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여 개산방죽(介山防築, 지금의 전평제)을 만들어 농사짓는데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으며, 방죽 위에 ‘수월당’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성리학을 연구하면서 당대 유학자 기대승, 박순, 이이, 노사신 등과 교유하고 ‘풍영정’의 주인 김언거와 깊은 우정을 나눴다.

개산방죽=전평제/수월당 정자 [정성환 기자]
개산방죽=전평제/수월당 정자 [정성환 기자]

1568년(43세)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내시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내시부 교관으로 첫 관직을 제수받았다.

1574년(49세)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운봉(남원) 현감에 제수되어 이성계가 황산 일대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격퇴한 전공을 기리기는 ‘황산대첩비’를 세웠으며,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울 정도로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이 황산대첩비는 일제강점기인 1945년 일제에 의해 폭파되었고, 1957년 파손된 비석들을 모아 다시 비각을 세운 것이 지금의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 세워진 ‘황산대첩비지’ 파비각이다.

숭의문(崇義門)/외삼문 [정성환 기자]
숭의문(崇義門)/외삼문 [정성환 기자]
경모문(景慕門)/내삼문 [정성환 기자]
경모문(景慕門)/내삼문 [정성환 기자]

1578년(53세) 전라도 충청도 도사, 성균관 직강을 거쳐 외직인 수령으로 근무할 때는 향교를 발전시켜 고을 유생들에게 학문을 강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영광군수와 밀양부사 재직 시, 그의 위민봉사(爲民奉仕) 정신은 백성들을 감화시켰으며 그를 기리는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러나 1589년(64세)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사헌부 지평 시절(1581년) 정여립의 이조정랑직 천거를 막았던 ‘이경중’을 탄핵한 사건이 문제가 돼 삭탈관직 되어 고향으로 낙향했다. 그리고 3년 후인 1592년(67세)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의열사(義烈祠) 전경 [정성환 기자]
의열사(義烈祠) 전경 [정성환 기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재산을 기부해 고경명, 김천일 장군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고향의 의병도청(義兵都廳)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군대의 무기와 양식을 조달했다.

또한 무능했던 전라감사 ‘이광’을 탄핵하고, 새로 부임한 전라감사 권율을 도와 이치 전투와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둬 왜군의 호남진출을 저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나주 목사로 재임하다 1593년 68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저서로 <회재유집>이 전하며, 광주 벽진서원에 배향되었다.

의열사(義烈祠)=사당 [정성환 기자]
의열사(義烈祠)=사당 [정성환 기자]

처음 벽진서원(碧津書院)은 1602년(선조35) 회재 박광옥(1526~1593) 선생의 덕행과 충의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나주 벽진촌(현,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동)에 세운 서원으로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1681년 숙종은 회재 선생을 도승지로 증직하고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추가 배향하여 의열사(義烈祠)라 사액을 내렸다.

벽진서원(碧津書院) 기적비(紀蹟碑) [정성환 기자]
벽진서원(碧津書院) 기적비(紀蹟碑) [정성환 기자]

이후 김덕홍, 김덕보, 오두인 등을 추가 배향해 오다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이후 음성 박씨 문중에서 1927년 묘소 옆에 ‘윤리영당’을 세우고 영정과 위폐를 봉안했는데, ‘윤리영당’이 도시개발 지역으로 편입되자, ‘회제’ 박광옥 선생의 사당인 ‘운리사’를 건립하여 영정과 위폐를 봉안하고 있었다.

회재 박광옥 선생 영정 [정성환 기자]
회재 박광옥 선생 영정 [정성환 기자]

2017년 ‘의열사’ 복원이 무산되자 ‘운리사’를 ‘벽진서원’으로 개칭하고 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사당인 의열사에 배향했다.

학문을 강학하는 강당의 중앙에 ‘벽진서원’, 동쪽에 ‘모현당’, 서쪽에 ‘숭본당’이라 칭하고, 2018년 현 위치에 벽진서원을 신축하여 선생의 덕망과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으며, ‘의열사’ 내에 <회재유집목판>이 보관돼 있다.

회재유집목판/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정성환 기자]
회재유집목판/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정성환 기자]

 

편액 [정성환 기자]
편액 [정성환 기자]

<회재유집>은 1847년(헌종 13) 7대손 ‘승언’이 편집, 간행한 시문집으로 선생의 상소 내용이 기록되어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 투쟁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회재 박광옥 선생묘소/부인 이천 서씨와 합장묘이다. [정성환 기자]
회재 박광옥 선생묘소/부인 이천 서씨와 합장묘이다. [정성환 기자]

그의 충절에 대해 <선조실록>은 “박광옥은 지난 임진년 고경명, 김천일 등과 서로 서찰을 통해가며 군대를 돕고, 군량을 저축하며 무기를 수선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극진히 호소하여 군사 수천 명을 모집해 권율에게 보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운리사 묘정비 [정성환 기자]
운리사 묘정비 [정성환 기자]

선생이 당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던 이유를 남인의 거두인 허목(1595~1682)이 쓴 비문에는 “선생은 심덕이 매우 후(厚)하며 온화하고 근엄하여 세인들에게 사랑을 느끼게 하였다”라고 새겨져 있다.

“운리사묘정비”를 쓴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의향인 광주의 상징적 인물이던 선생은 살아계시던 당시에 옥(玉) 같은 마음과 옥 같은 용모, 이름까지 옥이어서 삼옥(三玉)이라고 불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회재박선생유허비/전평제 소재 [정성환 기자]
회재박선생유허비/전평제 소재 [정성환 기자]
회재박선생유허비/전평제 소재 [정성환 기자]
회재박선생유허비/전평제 소재 [정성환 기자]
전평제/수월당 [정성환기자]
전평제/수월당 [정성환기자]

지금의 전평제(개산방죽) 주변에는 각종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특히 8월에는 진분홍색의 배롱나무꽃과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함께 어우러지는 신비로움은 광주시민들에게 최고의 휴식처를 제공해준다.

진평제=개산방죽 [정성환 기자]
진평제=개산방죽 [정성환 기자]
전평제/목교 [정성환 기자]
전평제/목교 [정성환 기자]
도심속의 벽진서원 [정성환 기자]
도심속의 벽진서원 [정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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